2008 영국 여행기 - 5. 둘째날: 11,000km를 날아서
Posted 2008/03/08 13:04, Filed under: 여행/2008 영국 여행기 1월 9일, 여행 둘쨋날. 나리타의 좁디좁은 호텔방에서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한번 씻고, 대강 나갈 준비를 한 다음 호텔 1층에 있는 레스토랑, '세리나(セリーナ, Selena)'에 갔다. 조식은 간단한 아침용 뷔페로 제공되었다. 준비된 음식들 중에 특별히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기본적인 식사로 딱히 부족함이 없는 아침 뷔페. 레스토랑 안에는 JAL 경유 승객이 이 호텔의 고객의 주를 이룬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세계 각국에서 온 듯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사람들 모두 여기서 하룻밤을 머물고,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어디론가로 떠나겠지. 나도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다시 나리타 공항 제2터미널로 돌아온 것은 아침 10시. 편지를 보낼 우체국을 찾다가 실패하고 10시 30분쯤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이후 탑승이 시작되는 11시 30분까지는 발견한 '야후!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야후! 카페'는 나리타 제2터미널 출국장 깊숙한 곳(새틀라이트로 가기 위해 셔틀을 타러 내려가는 곳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권만 보여주면 시간 제한없이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히드로와 인천에도 없는 서비스에 조금 감격하며 야후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PC를 이용했다.
11시 45분에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번 비행기는 JL 401 편으로, 기종은 보잉 777이었다. 과연 장거리를 다니는 대형 비행기답게 시설도 767보다 훨씬 좋았고, 공간도 넓었다. 자리는 비즈니스 클래스 바로 뒷 칸인 24D. 가운데 좌석들 중에서 왼쪽 통로 좌석이었으나, 한가운데 앉아있었던 서양인 여성이 '임신 중이라서 화장실을 많이 오가야 할 것 같은데 혹시 괜찮다면 자리를 바꿔달라'고 해서 자리를 바꿔주었다. 그래서 왼쪽은 임신부, 오른쪽은 일본인 할아버지 사이에 앉아 일본인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같이 나갔다 오느라 좀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는 정확히 12시에 활주로로 나와 도쿄의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후 12시간의 비행은 사실 좀 힘들었다. 비행기 안은 진동도 별로 없고 소음도 크지 않아 비교적 편안한 편이었지만 처음의 장거리 비행이어서 그런지 잠은 잘 오질 않았고 가져갔던 책,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도 생각만큼 잘 읽히지 않았다. 결국엔 좌석마다 탑재된 개인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의존해야 했다. (좌석마다 앞에 LCD 모니터가 있고, 리모콘으로 조작해서 영화나 음악, 영상 등을 감상하거나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편은 영화관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 닐 게이먼 원작의 '스타더스트'였고(다시봐도 여전히 재밌다), 나머지 하나는 '비너스(Venus)'라는 영화였다. 피터 오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국 영화인데, 런던을 배경으로 늙어가는 저명한 배우가 젊은 여성을 만나 활력과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내용이었다.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피터 오툴의 연기와 연출에서 느껴지는 과장하지 않은 노년의 슬픔이 좋았다. 이후 자려고 애써보기도 하고, '예전에 이런 것-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없었을 때는 어떻게 이 12시간을 견뎌냈을까' 따위의 생각도 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승무원이 전부 일본인인 것 같았던 인천과 나리타를 오가는 비행기와는 달리, 런던과 나리타를 오가는 JAL 비행기 안의 승무원들은 절반이 일본인, 절반은 서양인이었다. 여기서 약간의 애로사항이 발생했는데, 일본인 승무원들은 일본어로 된 질문에 내가 영어로 대답하면 다음부터는 기억을 하고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반면에, 서양인 승무원들은 내가 영어로 대답해도 꿋꿋히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내가 동양인이고 일부러 영어로 대답해준다고 생각했나보다. 서양인 승무원들의 어색한 일본어 억양을 듣는 것이 조금 재미있기도 했지만, 일본어로는 알아듣기는 해도 말을 전달하긴 힘들어서 조금 불편했다.
어쨌거나, 하드코어한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벌써 밖이 어스름해진 9일 오후 3시의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잠시 후 착륙한다는 방송을 듣고 기외 카메라 틀었을 때, 화면 속에 보였던 영국의 야경- 그중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나서 '저게 뭘까' 했던 것이 알고보니 히드로 공항의 활주로였던 것이 기억난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았는데, 다른 공항에서 내국인/외국인을 가르듯이 히드로에서도 EU/비EU가 나눠져있다. 비EU국인들이 서는 줄에서 나리타에서보다는 조금 더 짧은 45분 정도 기다리자, 입국심사대로 가게 되었다. 앞선 사람들은 입국심사할 때 이런저런 서류들도 보여주고, 질문도 오래하는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내 앞의 흑인심사관은 아주 무난한 단 3개의 질문-'무슨 목적으로 왔냐', '얼마나 머물거냐', '영국은 처음이냐'-만 던지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세관을 통과해 출국장밖으로 나오니 공항은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해놨기 때문에 짐을 찾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이동을 해야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중심가까지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빠른 것은 역시 히드로 익스프레스다. 히드로 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는 일종의 공항 직통열차로 히드로 터미널 3에서부터 런던 패딩턴역까지 약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그 속도가 조금 무리하게 일정을 잡는 것이 가능한 이유였다. 대신 운임은 좀 비싼 편인데, 편도가 15파운드(한화 3만원)정도 한다.1 확실히 비싸기는 하지만 히드로 익스프레스도 일종의 기차이기 때문에, 브릿레일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패스를 오픈해야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 매표소에 가서 오픈해 달라고 말했더니 인도계로 보이는 카운터 직원이 '여기서는 오픈이 안된다. 날짜만 적어줄테니 패딩턴 역에 가서 오픈해라'면서 보는 내가 불안해질 정도로 서투르게 날짜를 적어주었다. 급한 마음에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플랫폼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패스를 살펴보았는데 날짜를 9월9일로 잘못적어준게 아닌가. 당황해서 매표소로 돌아가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쏘리, 브라더-'라면서 볼펜으로 마치 내가 고친 것 마냥 글자를 수정해주었다. 철도패스에 대해 알아보면서 '절대 역무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날짜를 적어선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에 괜히 불안했지만, 다행히 열차 안에서 표를 확인할 때도 '패딩턴에 가서 확인해라'라며 별 문제 없이 통과. 패딩턴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확인 도장을 받아 패스를 제대로 오픈했다. 다음에는 패딩턴 지하철역에서 한국의 교통카드와 비슷한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하고 지하철로 갈아탔다. 목적지는 워털루.
다시 나리타 공항 제2터미널로 돌아온 것은 아침 10시. 편지를 보낼 우체국을 찾다가 실패하고 10시 30분쯤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이후 탑승이 시작되는 11시 30분까지는 발견한 '야후!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야후! 카페'는 나리타 제2터미널 출국장 깊숙한 곳(새틀라이트로 가기 위해 셔틀을 타러 내려가는 곳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권만 보여주면 시간 제한없이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히드로와 인천에도 없는 서비스에 조금 감격하며 야후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PC를 이용했다.
11시 45분에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번 비행기는 JL 401 편으로, 기종은 보잉 777이었다. 과연 장거리를 다니는 대형 비행기답게 시설도 767보다 훨씬 좋았고, 공간도 넓었다. 자리는 비즈니스 클래스 바로 뒷 칸인 24D. 가운데 좌석들 중에서 왼쪽 통로 좌석이었으나, 한가운데 앉아있었던 서양인 여성이 '임신 중이라서 화장실을 많이 오가야 할 것 같은데 혹시 괜찮다면 자리를 바꿔달라'고 해서 자리를 바꿔주었다. 그래서 왼쪽은 임신부, 오른쪽은 일본인 할아버지 사이에 앉아 일본인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같이 나갔다 오느라 좀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는 정확히 12시에 활주로로 나와 도쿄의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후 12시간의 비행은 사실 좀 힘들었다. 비행기 안은 진동도 별로 없고 소음도 크지 않아 비교적 편안한 편이었지만 처음의 장거리 비행이어서 그런지 잠은 잘 오질 않았고 가져갔던 책,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도 생각만큼 잘 읽히지 않았다. 결국엔 좌석마다 탑재된 개인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의존해야 했다. (좌석마다 앞에 LCD 모니터가 있고, 리모콘으로 조작해서 영화나 음악, 영상 등을 감상하거나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편은 영화관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 닐 게이먼 원작의 '스타더스트'였고(다시봐도 여전히 재밌다), 나머지 하나는 '비너스(Venus)'라는 영화였다. 피터 오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국 영화인데, 런던을 배경으로 늙어가는 저명한 배우가 젊은 여성을 만나 활력과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내용이었다.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피터 오툴의 연기와 연출에서 느껴지는 과장하지 않은 노년의 슬픔이 좋았다. 이후 자려고 애써보기도 하고, '예전에 이런 것-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없었을 때는 어떻게 이 12시간을 견뎌냈을까' 따위의 생각도 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승무원이 전부 일본인인 것 같았던 인천과 나리타를 오가는 비행기와는 달리, 런던과 나리타를 오가는 JAL 비행기 안의 승무원들은 절반이 일본인, 절반은 서양인이었다. 여기서 약간의 애로사항이 발생했는데, 일본인 승무원들은 일본어로 된 질문에 내가 영어로 대답하면 다음부터는 기억을 하고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반면에, 서양인 승무원들은 내가 영어로 대답해도 꿋꿋히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내가 동양인이고 일부러 영어로 대답해준다고 생각했나보다. 서양인 승무원들의 어색한 일본어 억양을 듣는 것이 조금 재미있기도 했지만, 일본어로는 알아듣기는 해도 말을 전달하긴 힘들어서 조금 불편했다.
어쨌거나, 하드코어한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벌써 밖이 어스름해진 9일 오후 3시의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잠시 후 착륙한다는 방송을 듣고 기외 카메라 틀었을 때, 화면 속에 보였던 영국의 야경- 그중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나서 '저게 뭘까' 했던 것이 알고보니 히드로 공항의 활주로였던 것이 기억난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았는데, 다른 공항에서 내국인/외국인을 가르듯이 히드로에서도 EU/비EU가 나눠져있다. 비EU국인들이 서는 줄에서 나리타에서보다는 조금 더 짧은 45분 정도 기다리자, 입국심사대로 가게 되었다. 앞선 사람들은 입국심사할 때 이런저런 서류들도 보여주고, 질문도 오래하는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내 앞의 흑인심사관은 아주 무난한 단 3개의 질문-'무슨 목적으로 왔냐', '얼마나 머물거냐', '영국은 처음이냐'-만 던지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세관을 통과해 출국장밖으로 나오니 공항은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해놨기 때문에 짐을 찾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이동을 해야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중심가까지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빠른 것은 역시 히드로 익스프레스다. 히드로 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는 일종의 공항 직통열차로 히드로 터미널 3에서부터 런던 패딩턴역까지 약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그 속도가 조금 무리하게 일정을 잡는 것이 가능한 이유였다. 대신 운임은 좀 비싼 편인데, 편도가 15파운드(한화 3만원)정도 한다.1 확실히 비싸기는 하지만 히드로 익스프레스도 일종의 기차이기 때문에, 브릿레일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패스를 오픈해야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 매표소에 가서 오픈해 달라고 말했더니 인도계로 보이는 카운터 직원이 '여기서는 오픈이 안된다. 날짜만 적어줄테니 패딩턴 역에 가서 오픈해라'면서 보는 내가 불안해질 정도로 서투르게 날짜를 적어주었다. 급한 마음에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플랫폼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패스를 살펴보았는데 날짜를 9월9일로 잘못적어준게 아닌가. 당황해서 매표소로 돌아가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쏘리, 브라더-'라면서 볼펜으로 마치 내가 고친 것 마냥 글자를 수정해주었다. 철도패스에 대해 알아보면서 '절대 역무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날짜를 적어선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에 괜히 불안했지만, 다행히 열차 안에서 표를 확인할 때도 '패딩턴에 가서 확인해라'라며 별 문제 없이 통과. 패딩턴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확인 도장을 받아 패스를 제대로 오픈했다. 다음에는 패딩턴 지하철역에서 한국의 교통카드와 비슷한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하고 지하철로 갈아탔다. 목적지는 워털루.
- 이보다 조금 느린 대신 가격은 절반 정도인 '히드로 커넥트(Heathrow Connect)'도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런던 도심으로 들어간다면 그 돈을 내고 히드로 커넥트를 타느니 튜브 피카딜리 라인을 타거나, 버스를 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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