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거리에서 마주친 촛불
Posted 2009/01/29 03:14, Filed under: 기록/일상 이야기가끔 저녁 시간에 강남역에 가면, 6번 출구 앞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을 본다. 작년 여름, 거리마다 한창 촛불이 불타올랐었던 그 때에도 간간히 보았지만-그때도 저녁즈음 강남거리에서 전구로 만든 촛불을 든 사람들을 몇 번 마주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 촛불이 점차 사그러든 이후에도 간혹 6번 출구 앞에서는 촛불들을 볼 수 있었다.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도 없다. 가끔씩은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하지만 그저 그들은 보통 조용히 불꽃을 든 채로 서있다. 알루미늄 이젤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명박을 합성한 패러디 이미지나,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자료를 담은 패널을 전시하듯 걸어놓고. 그 북적이는 저녁 시간대의 강남역, 그것도 가장 붐비는 6번 출구에서. 매번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어떤 단체나 커뮤니티가 주축이 되서 하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촛불은 촛불로만 보일 뿐이다. 바삐 지나가는 인파들 속에서 조용히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촛불.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속으로라도 말을 건네곤 했다. 반갑다고, 힘내라고. 공감한다고.
오늘도 강남역을 들렀다가 그 촛불을 보았다. 문득, 며칠전 인재로 사람이 죽은 비통한 사건 앞에서도 ‘과격 시위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와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슬퍼졌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 마치 그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 내게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기운이 났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나가는 강남역의 인파 중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분명 있을 거다.
문득 요즘 유럽에서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는 반정부 시위가 생각났다. 이번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경제위기’로 촉발되어 지난 12월 경찰의 손에 15세 소년이 죽자 대규모로 확산된 그리스의 반정부 시위 소식과, 젊은 이들의 교육문제로 시작된 이탈리아의 시위 소식이 실려있었다. 어느새, 오늘 인터넷 뉴스를 보니 ‘국가부도’로 시위가 있었던 아이슬란드의 현정권이 붕괴되었다는 소식과 라트비아를 비롯한 발트3국에서도 큰 규모의 시위가 일고 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에서도 8개의 주요 노조연맹이 바로 오늘 29일 하루동안 연대 총파업을 한다고 한다. 이런 시위가 촉발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세계 경제 위기’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는 특히 젊은 세대들이 살기 힘든 사회구조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가 늙은이와 젊은이를 따져서 찾아올리가 만무하지만 경제-금융위기가 찾아오기 바로 이전부터, 20대- 젊은 세대가 유난히 살아가기 팍팍해진 것은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젊은 세대의 위기’는 요즘 세계 어딜가나 비슷한 현상인가보다. 적어도 G20에 포함되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1000유로세대라는 말이 어느새 700유로세대로 바뀌었고,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게 된 해직자가 넘쳐난다는 미국 상황은 말할 것도 없겠다. 다만 브라질이라던가 남미, 인도쪽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젊은 세대의 위기’는 ‘금융산업’을 키운 서구화된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도. 그런데 ‘파생상품’등으로 수식되는 ‘금융산업’의 문제와 ‘일자리,비정규직’등으로 수식되는 청년층 문제는 어떤 관련이 있는걸까. 금융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노동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인가.
Perhaps the most poignant emblem of this dereliction is the British pub. The pub is the archetypal small business - the simplest, most rooted organisation there is. Pubs have thrived for centuries. But they are now closing at a rate of around 30 a week. Part of this is due to changing social habits. But it is also the case, not to put too fine a point on it, that pubs have been rogered frontwards, backwards and sideways by financial whizzkids who piled them with complex debt and left them desperately underinvested - at the same time extracting exorbitant fees for the privilege.
The death of the local is a fitting monument to a bankrupt management model. It's time to get angry.
영어 공부를 겸해 구독해서 읽기 시작한지도 벌써 네달째에 접어드는 가디언 위클리Guardian Weekly의 이번호에는 사이먼 컬킨Simon Caulkin이 옵저버에 썼던 칼럼이 실렸다.(1월 11일자 칼럼. 이번호라고 해도 보통 한국에 딱1주일늦게 도착하고, 또 내가 읽는 것은 그로부터 1주일간이니 실질적으로는 2주 늦게 읽는 셈이다.) 경제위기가 아이슬란드만큼이나 심각하다는 금융강국 영국. 칼럼의 내용은 자국내의 암울한 불황과 그 원인에 대한 것이었는데 바로 위에 인용한 마지막 문단, 특히 그중에서도 “It's time to get angry.”라는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돌아본 온라인 뉴스 한구석에서 ‘영국의 위기’ 운운하는 기사가 눈에 들어와도 그리 놀랍지 않을 정도로.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처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날까? 한국은? 요즘 매일같이 청년실업 문제가 뉴스의 한구석을 장식하는 것만 봐도, 역시 ‘체감’되는 위기가 상당한 것 같다. 내가 당장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업준비생인 내 친구들 중 몇몇은 지금 이 순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한번, 한국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날까? ‘쇠고기 파동’과는 성향이 다른 어떤 시위가. 그럼, 그 시위가 답을 전해줄 수 있을까? 우리를 둘러싼 사회 경제적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시기를 견뎌내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역시 군대나 가야하는 걸까.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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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글에 뜬금없는 한마디. 영어 해석은 안 해 주시는 겁니까. 영어에 무지한 이를 위해. 너무하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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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사실 저도 제대로 옮길 자신이 없어서 그냥 영어로 나뒀던 것인데.. 흑흑. ㅠ_ㅠ
인용한 문단은 영국 선술집 '펍'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 전까지는 이번 경제 위기에 대한 이야기-비대하진 금융산업, 자본가-노동자 그 둘의 사이에 위치하는 '경영' 차원에서 진행되어온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 레이거노믹스,대처리즘의 병폐-가 죽 이어지고요.
마지막으로 지난 수백년간 번성했던 '펍'이 최근에는 매주 30여개꼴로 문을 닫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사회적 습관의 변화로 인한 것이지만, 금융업자들이 그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들었기 때문이 크다는 거에요. 그동안에 자신들은 위한 상상을 초월하는 특권을 뽑아내고 있었고..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지역 펍의 죽음은 파산한 경영 모델의 결실이다. 이제 화를 내야 할 때다." 여기에서 "이제 화를 내야 할 때다"라는 건, 기사의 가장 첫 문단에 언급한 1968년 파리와 런던의 대규모 시위와 1년넘게 이어졌던 1980년대의 파업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요. 바꾸어 말하면 그 기사의 제목과도 같은 말이죠. :)
(암튼 맨 처음 썼던 글에는 영어 인용구를 뺐기도 했었고- 굳이 읽지 않아도 블로그 글 전체에서 하려는 이야기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길래 그냥 다시 넣고 내버려 둔 거랍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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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크로즈님 안녕하세요.
지난 10월 8일 하루를 마치고 강남역에서 올라오다가 마침 100일을 맞고 있는 강남촛불 분들을 처음 보고 와락 반가운 마음에(+버릇대로?!) 그 자리에서 동참해버리고 ^^; 백일기념 떡까지 얻어먹었던 생각이 나네요. 그로부터 이제 또 백 일도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하셨군요 그 분들은. 날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매워졌는데 자주 동참하지 못하는 제 마음은 죄스럽고 달크로즈님께서 보시고 속으로 응원하셨다는 게 따뜻해지네요.^^ 저도 처음 댓글 달아봅니다.
인용하신 문단에서 영국인들의 해묵은 펍 사랑을 느꼈습니다. 펍이 망해간다면 그들은 정말 일어설 것 같습니다(...)-
앗, 오리님은 그럼 그 강남촛불분들과 직접 함께 하신 적이 있으신 거군요. ^_^
엊그제도 광화문쪽에선 꽤 대규모의 시위가 있었고 연행되신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정말 마음이 무겁네요.
첫댓글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
영국인들 '해묵은' 사랑은 참 무서운(?) 것 같아요. 후후. 펍때문에 일어서자니, 참 그네들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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