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 6층에서

런던에서의 첫아침, 호스텔 6층 옥상발코니 너머로 보이는 사우스켄싱턴 풍경.

 2008년 1월 10일. 여행 셋째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런던에서 맞이한 첫번째 아침.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호스텔의 식당으로 향하는데 창밖을 보니 날이 흐렸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 밑에 촘촘한 벽돌 건물들. 영국의 겨울날씨에 대해서는 이미 각오한 터. 호락호락하게 맑은 하늘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잼을 바른 토스트와 토스트와 빵, 오트밀 죽과 오렌지 쥬스로 아침을 먹고(이때까지는 아직 아침 식사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 전이었다.)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우산을 챙겨 들고 숙소를 나섰다.

빅토리아에서 테이트 브리튼까지

빅토리아에서 테이트 브리튼까지. (더 자세한 지도는 이미지를 클릭)
©2008 Google - Map data ©2008 Tele Atlas

 이 날의 첫번째 목적지는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이었다. 테이트 브리튼은 템즈 강변의 밀뱅크(Millbank)에 위치해있다. 지도상으로 가장 가까운 튜브 역은 핌리코(Pimlico)였지만 개관 시각인 10시까지는 아직 1시간 여가 남아있는 상황이어서, 런던 거리 구경도 할겸 점심 약속이 있는 빅토리아 역에서부터 걸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Gloucester Road역에서 빅토리아역까지는 지하철로 2정거장밖에 안걸리는 가까운 거리. 금새 도착했지만, 이때는 아직 런던에서의 길 찾기에 익숙하지 못했던 때였기에 조금 긴장한 채로 역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길을 찾아 나섰다. 사실 빅토리아에서 테이트 브리튼까지는 복스홀(Vauxhall) 로드만 따라가면 되었으니 길을 못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이때는 지나치는 길거리 풍경을 사진에 담아둘 생각도 하지 못했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영국의 흐린 날씨.

테이트 브리튼 입구(Manton Entrance)에서 본 풍경.

호스텔 6층에서

개관을 기다리며 입구 앞에 줄서있는 사람들.

 천천히 3-40분 정도를 걸어서 테이트 브리튼에 도착했다. 과거 밀뱅크 감옥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테이트 브리튼은 이번 여행의 목표인 4개의 테이트 갤러리 가운데 가장 긴 역사를 지닌 갤러리로, 1897년 '영국 미술을 위한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British Art)'으로서 오픈했고, 2000년도에는 테이트 모던의 개관을 맞아 테이트 브리튼으로 이름을 새롭게 바꾸었다. 브리튼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테이트 브리튼은 1500년대부터 시작하여 컨템포러리까지 이르는 '영국 미술'만을 전시한다. 미술관에 도착한 때가 대략 개관 시간을 약 10분쯤 앞두었을 때였는데, 이미 한 20명 남짓한 사람이 개관을 기다리며 느슨하게 줄을 서 있었다. 그들 틈에 섞여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다가 오전 10시, 개관과 동시에 입장했다.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표지점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밀레이 특별전

티켓과 티켓에 딸려오는 안내책자, 그리고 도록. 입장료1는 학생 9파운드.

 테이트 브리튼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하지만)세계 최대의 테이트 영국미술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상설전 뿐만 아니라, 시기마다 특별 전시가 열린다. 내가 방문할 시기에는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 밀레이 특별전은 내가 테이트 브리튼을 방문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2007년 9월 26일부터 시작해서 2008년 1월 13일이면 끝나는 전시였기 때문에,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영국 내에서의 일정까지 바꾸었을 정도였으니. (역대 터너상 수상작들을 모아서 전시한 터너상 회고전도 무척 보고 싶었던 전시였지만 내가 영국에 도착하기 며칠 전에 전시가 끝나버렸다.)


밀레이 전시 도록

전시 도록

 이 전시는 밀레이의 거의 모든 주요작품들을 총 망라한 최대 규모의 전시로, 이 특별전의 타이틀 그림은 그 유명한 '오필리어'였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그림을 그린 밀레이보다도 유명할 지 모르는 저 그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그림이어서 놀랐고, 큰 그림 어느 구석이나 모자란 부분 없이 세밀하게 묘사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 그림만 감탄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전시되어있는 거의 모든 작품이 '기술적'으로는 전혀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었다. 작품 속 옷의 질감이 현기증 날 정도로 생생하게 보였던 '이사벨라'나 '마리아나'를 비롯해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일일히 열거하기는 힘들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L’Enfant du Régiment 1854-5' 이라는 작품이었다.2 팔을 다친 소녀가 군복을 덮고 잠이 들어있는 그림인데, 하얀색 대리석 바탕 가운데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남색 군복과 소녀가 정말 인상적이었고,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마음에 들었었다.

 라파엘전파(PRB) 시기의 대표작부터, 스코틀랜드의 풍광을 담은 후기 풍경화들까지. 밀레이의 작품을 직접 보기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내용도 충실한 전시였다. 이 전시는 1월 13일에 테이트 브리튼 전시를 마치고, 세계 투어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벌써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의 전시가 마무리되었고, 일본 후쿠오카에서의 전시가 준비되고 있다. 6월에서 8월까지 후쿠오카 시립 미술관에서의 전시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도쿄 분카무라(文化村) 미술관에서 2008년 10월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아직 이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다. 만약 밀레이를 좋아한다면,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싶다면 일본에서라도 꼭 이 전시를 보기를 권한다. 밀레이의 전생애에 걸친 작품들을 이렇게 다양한 소장처에서 가져다 모아놓은 전시는 최소한 당분간은 다시 만나기 힘들테니까.

 전시 막판이라 그런지 밀레이 전시를 보는 동안 내내 특별 전시실안에는 사람이 북적였다. 밀레이 전시를 다 보고 나자 시간은 대략 12시 즈음. 이미 상당히 지쳐버렸지만, 테이트의 영국작가 컬렉션들로 이루어지는 상설 전도 일부 보기로 했다. 다른 건 미처 못보고 터너만 봤는데, 그 이유는 짧지 않은 여행기간 동안 테이트 브리튼에 다시 들러 천천히 돌아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터너의 작품들은 과연 테이트 브리튼 컬렉션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작품들 답게 여러 전용(?) 전시실에 나눠져 전시가 되고 있었는데, 어두운 톤의 초기 유화그림들도 흐릿하게 기억에 남았기는 하지만 역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은 후기 풍경화들과 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이 달리 보이는 것만 같은 한 독특한 인상을 주는 터너의 수채화watercolour 작품들이었다. 3 그 밖에도 ART NOW라는 컨템포러리 영국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을 봤다.

 그리고는 샵에 들러 이런 저런 테이트의 상품들을 구경했는데, 엽서들과 함께 전시말 할인판매중이었던 '밀레이 전시 도록'을 고민고민 하다가 끝내 사고야 말았다. 페이퍼백이라고는 하지만 올컬러 하드코팅지에 270p가 넘는 두껍고 무거운 도록. 이걸 살 때까지만 해도 '몸만 다니기도 힘든데 이런 도록을 싸들고 다닐 생각을 하다니 내가 미쳤지'라고 생각했었으나, 이것이 바야흐로 이번 여행 '도록 쇼핑'의 시작에 불과했으니..

 어쨋든 쇼핑을 마친 후 2층 밀뱅크 입구Millbank Entrance 근처 회랑4의 휴식공간에서 한국으로 보낼 편지와 엽서를 썼다. 그런 뒤, 오후 1시 20분 쯤 만나기로 한 친구의 전화를 받고 테이트 브리튼을 나섰다. 이때는 워낙 만족스러웠던 밀레이와 터너 전시 때문에 테이트 브리튼을 떠나는 데 별 아쉬움이 없었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커졌다. 다음에 또 런던에 들른다면 꼭 다시 가볼 곳 중 하나. 그때는 시간을 들여 정성껏 봐주겠다고, 뒤늦게 결심했다.

  1. 원래 테이트 브리튼을 비롯한 영국의 주요 공공 미술관, 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다. 다만, 밀레이 전과 같은 특별 전시는 소정의 입장료를 별도로 받는다. [Back]
  2. 바로 요 그림. (via Google 이미지 검색)
    이 작품의 원소장처는 the Yale Center for British Art, Paul Mellon Fund 이다. [Back]
  3. 당시 테이트 브리튼의 같은 층 전시실에선 'Hockney on Turner Watercolours'라는 터너의 수채화를 주제로 한 별도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Back]
  4. 테이트 브리튼 웹사이트의 익스플로어 맵에선 정확히 표시되어있지는 않은데, 'ambulatories'라고 표시된 그 부근이다. [Back]
2008/06/04 09:56 2008/06/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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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A. 2008/06/05 11:50 Delete Reply

    이 얼마만의 포스팅인가.. 다시 부지런해지게나!!

    그나저나 나도 영국좀 ㄱ-

    1. Re: # 달크로즈 2008/07/03 19:18 Delete

      빨리 이 다음 포스팅을 해야할텐데. 이대로 가다가 올해 내로 이 여행기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슬슬 기억도 희미해져 가는데...

  2. # OpenID Logo사은 2008/06/15 01:16 Delete Reply

    수, 목요일에는 3개월 만에 런던에 다녀왔어요. 지인들을 뵈러 간 건데, 탬즈강변을 걷다 보니 관광을 하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되서 좋더군요. 달크로즈님의 영국 여행기는 여행의 한 구석도 빼놓지 않고 적어놓으시는 것 같아요. :)

    1. Re: # 달크로즈 2008/07/03 19:19 Delete

      겨울의 탬즈 강변. 생각나네요. ^_^
      맨처음에는 여행의 한 구석도 빼놓지 않고 적으려고 했었는데, 이제 슬슬 기억이 희미해져서, 이제는 좀 대충대충 적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있는 와중이랍니다. 그래도 써봐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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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I Southbank

BFI 사우스뱅크의 정문.

  워털루 역에서 내려 곧장 BFI 사우스뱅크로 향했다. BFI(British Film Institude)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영상자료원쯤에 해당하는 곳으로 BFI National Archive, BFI National Library 등을 통해 영상자료를 수집,발굴,보관하고, 시민들이 열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BFI는 오래된 옛 영화들이나 영국 내에 소개되지 않는 해외의 여러 영화들을 소개하는 아트시네마의 역할도 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국의 공영 시네마테크다.

 워털루역에서 어떻게 찾아갈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도를 대강보고 직감대로 따라갔더니 나오더라. 티켓을 찾는 것도 예매내역만 제시하니 일사천리(신용카드를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학생증도-). 건물 안에 따로 라커나 물품보관소는 없었지만, 매표소 직원과 다른 직원이 친절한 도움을 받아 영화를 보는 동안 캐리어를 시큐리티 룸에 맡겨둘 수 있었다.

BFI의 NFT1관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 NFT 1관 내부. 마치 극장처럼 생겼다.

 시큐리티 룸에 내가 가방을 놓아두는 동안, 그 옆에서는 직원이 구내방송 마이크를 들고 내가 볼 영화가 곧 시작한다는 파이널 콜을 하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4시 25분. 서둘러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NFT1관 내부는 마치 극장처럼 생겼다. 사진 속에 빨간색 커튼이 쳐져있는 곳이 스크린인데, 상영 시각이 다가오면 아래 조명이 꺼지고 커튼이 양쪽으로 걷어지면서 필름 상영이 시작된다. 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큰 상영관임에도, 한국의 멀티플렉스처럼 좌석의 경사가 심하지 않다. 가장 뒤까지 올라와도 그리 높다는 느낌이 안드는 낮은 경사의 좌석들. 대신, 좌석 구조가 마치 약간 누워있는 것처럼 되어있다. 아주 조금 스크린을 올려다 보는 상태.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앞사람의 머리에 가려 불편을 겪을일은 없다. 의자도 불편하지 않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디자인되어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주노 영화 티켓

Juno 티켓. 좌석은 L26, 가격은 5.25파운드.

 이날 본 영화는 미국독립영화 '주노(Juno)'. 지금은 한국에도 개봉을 해서 많이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도 작년 겨울 개봉했기 때문에 한국에는 그리 알려져있지 않았었다. 예매를 했을 때부터 영국에서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도 이 영화가 한국에서 이렇게 빨리 개봉할 줄은 전혀 몰랐으니.. 그저 한국 개봉보다 한달반쯤 먼저봤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뿐.

영화는 16세의 소녀 Juno가 임신을 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남다른 센스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서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재치있게, 재기발랄한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미성년의 임신을 조금 가볍게 다룬 면이 있지만, 제작자의 말마따나 “현실보다 더 밝은 삶을 이끌어주는 코미디”로서는 영화 보는 동안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던 잘 만든 독립영화, 잘 만든 틴에이지 무비였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유머를 자막도 없이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봤다. 특히 노래도 좋았는데, 마지막에 주인공 둘이 Anyone Else But You를 부르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캐리어를 찾고 BFI 안을 살펴보다가 영화 '스위니 토드' 의상 전시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BFI에서는 12월달에 팀 버튼 특별전을 했다는 것 같았다. (1월달은 빔 벤더스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영화 속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입었다는 의상, 의상 디자인, '면도날'을 포함한 소품들이 한구석에 조용히 전시되고 있었다.

스위니 토드에서 의상 디자인을 맡은 Colleen Atwood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액자에 담긴 의상 디자인들

'스위니 토드'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러빗 부인 역)의 의상

조니 뎁(벤자민 파커/스위니 토드 역)의 의상

'면도날'을 비롯한 소품들.


 그 뒤에는 숙소인 Meininger City Hostel이 있는 사우스 켄싱턴의 Gloucester Road 역으로 갔다. 이때는 아직Road/Street 명으로 길을 찾아가는게 익숙하지 않았을 무렵.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숙소를 30분간을 헤메다 결국 행인에게 길을 묻고서야 숙소를 찾아 무사히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예약한 것은 12인실 도미토리였지만, 방이 없었는지 4인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늦은 시각 때문인지 방안사람들은 다 자고 있었다. 짐을 풀고, 간단히 씻은 다음, 런던에서의 첫날을 마무리 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08/03/08 17:15 2008/03/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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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OpenID Logo아르하나즈 2008/03/09 22:52 Delete Reply

    티켓이 지하철 표랑 비슷하게 생겼네.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나봐. 원어민이랑 불편함 없이 소통하다니...
    주노... 흠 한국에선 그렇게 까진 안떳다고 하던대. 문화 차이인가..
    그나저나 전시관 잘꾸며놨네 멋져~

    1. Re: # 달크로즈 2008/03/10 16:22 Delete

      음~ 실제로 보면 지하철 표보단 훨씬 크다오. ^_^;
      여행을 다니면서 의사소통이 안되어 곤란했던 경험은 없긴 한데, 그 까닭이 내 영어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여행자'로서 방문한 것이니 만큼, 쓰는 표현 같은 것도 대략적으로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 특히나 내가 여행자 티를 내고 물어본다면, 상대방도 나름 감안을 해주고 대응해주기 때문에.. :)

      주노는 한국에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는 꽤 호평을 받았고, 제작비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흥행한 편이라더라. (폭스서치라이트에서 원스를 능가하는 대박을 맞았다고 하니..)

      스위니 토드 전시 같은 경우는 딱히 전시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우리나라로 치면 로비공간 같은데 전시해놓은 것. 전시관(Gallery)가 따로 있었고, 영국 여배우 누군가(기억 안남;)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시간 관계상 가보지 못해 아쉬웠어.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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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9일, 여행 둘쨋날. 나리타의 좁디좁은 호텔방에서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한번 씻고, 대강 나갈 준비를 한 다음 호텔 1층에 있는 레스토랑, '세리나(セリーナ, Selena)'에 갔다. 조식은 간단한 아침용 뷔페로 제공되었다. 준비된 음식들 중에 특별히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기본적인 식사로 딱히 부족함이 없는 아침 뷔페. 레스토랑 안에는 JAL 경유 승객이 이 호텔의 고객의 주를 이룬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세계 각국에서 온 듯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사람들 모두 여기서 하룻밤을 머물고,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어디론가로 떠나겠지. 나도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다시 나리타 공항 제2터미널로 돌아온 것은 아침 10시. 편지를 보낼 우체국을 찾다가 실패하고 10시 30분쯤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이후 탑승이 시작되는 11시 30분까지는 발견한 '야후!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야후! 카페'는 나리타 제2터미널 출국장 깊숙한 곳(새틀라이트로 가기 위해 셔틀을 타러 내려가는 곳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권만 보여주면 시간 제한없이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히드로와 인천에도 없는 서비스에 조금 감격하며 야후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PC를 이용했다.

나리타 국제 공항

탑승을 위해 게이트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있는 가게를 지나치면 더 이상 가게는 없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11시 45분에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번 비행기는 JL 401 편으로, 기종은 보잉 777이었다. 과연 장거리를 다니는 대형 비행기답게 시설도 767보다 훨씬 좋았고, 공간도 넓었다. 자리는 비즈니스 클래스 바로 뒷 칸인 24D. 가운데 좌석들 중에서 왼쪽 통로 좌석이었으나, 한가운데 앉아있었던 서양인 여성이 '임신 중이라서 화장실을 많이 오가야 할 것 같은데 혹시 괜찮다면 자리를 바꿔달라'고 해서 자리를 바꿔주었다. 그래서 왼쪽은 임신부, 오른쪽은 일본인 할아버지 사이에 앉아 일본인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같이 나갔다 오느라 좀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는 정확히 12시에 활주로로 나와 도쿄의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후 12시간의 비행은 사실 좀 힘들었다. 비행기 안은 진동도 별로 없고 소음도 크지 않아 비교적 편안한 편이었지만 처음의 장거리 비행이어서 그런지 잠은 잘 오질 않았고 가져갔던 책,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도 생각만큼 잘 읽히지 않았다. 결국엔 좌석마다 탑재된 개인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의존해야 했다. (좌석마다 앞에 LCD 모니터가 있고, 리모콘으로 조작해서 영화나 음악, 영상 등을 감상하거나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편은 영화관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 닐 게이먼 원작의 '스타더스트'였고(다시봐도 여전히 재밌다), 나머지 하나는 '비너스(Venus)'라는 영화였다. 피터 오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국 영화인데, 런던을 배경으로 늙어가는 저명한 배우가 젊은 여성을 만나 활력과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내용이었다.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피터 오툴의 연기와 연출에서 느껴지는 과장하지 않은 노년의 슬픔이 좋았다. 이후 자려고 애써보기도 하고, '예전에 이런 것-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없었을 때는 어떻게 이 12시간을 견뎌냈을까' 따위의 생각도 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승무원이 전부 일본인인 것 같았던 인천과 나리타를 오가는 비행기와는 달리, 런던과 나리타를 오가는 JAL 비행기 안의 승무원들은 절반이 일본인, 절반은 서양인이었다. 여기서 약간의 애로사항이 발생했는데, 일본인 승무원들은 일본어로 된 질문에 내가 영어로 대답하면 다음부터는 기억을 하고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반면에, 서양인 승무원들은 내가 영어로 대답해도 꿋꿋히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내가 동양인이고 일부러 영어로 대답해준다고 생각했나보다. 서양인 승무원들의 어색한 일본어 억양을 듣는 것이 조금 재미있기도 했지만, 일본어로는 알아듣기는 해도 말을 전달하긴 힘들어서 조금 불편했다.

 어쨌거나, 하드코어한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벌써 밖이 어스름해진 9일 오후 3시의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잠시 후 착륙한다는 방송을 듣고 기외 카메라 틀었을 때, 화면 속에 보였던 영국의 야경- 그중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나서 '저게 뭘까' 했던 것이 알고보니 히드로 공항의 활주로였던 것이 기억난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았는데, 다른 공항에서 내국인/외국인을 가르듯이 히드로에서도 EU/비EU가 나눠져있다. 비EU국인들이 서는 줄에서 나리타에서보다는 조금 더 짧은 45분 정도 기다리자, 입국심사대로 가게 되었다. 앞선 사람들은 입국심사할 때 이런저런 서류들도 보여주고, 질문도 오래하는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내 앞의 흑인심사관은 아주 무난한 단 3개의 질문-'무슨 목적으로 왔냐', '얼마나 머물거냐', '영국은 처음이냐'-만 던지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세관을 통과해 출국장밖으로 나오니 공항은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

히드로 익스프레스 안에서.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해놨기 때문에 짐을 찾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이동을 해야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중심가까지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빠른 것은 역시 히드로 익스프레스다. 히드로 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는 일종의 공항 직통열차로 히드로 터미널 3에서부터 런던 패딩턴역까지 약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그 속도가 조금 무리하게 일정을 잡는 것이 가능한 이유였다. 대신 운임은 좀 비싼 편인데, 편도가 15파운드(한화 3만원)정도 한다.1 확실히 비싸기는 하지만 히드로 익스프레스도 일종의 기차이기 때문에, 브릿레일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패스를 오픈해야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 매표소에 가서 오픈해 달라고 말했더니 인도계로 보이는 카운터 직원이 '여기서는 오픈이 안된다. 날짜만 적어줄테니 패딩턴 역에 가서 오픈해라'면서 보는 내가 불안해질 정도로 서투르게 날짜를 적어주었다. 급한 마음에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플랫폼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패스를 살펴보았는데 날짜를 9월9일로 잘못적어준게 아닌가. 당황해서 매표소로 돌아가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쏘리, 브라더-'라면서 볼펜으로 마치 내가 고친 것 마냥 글자를 수정해주었다. 철도패스에 대해 알아보면서 '절대 역무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날짜를 적어선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에 괜히 불안했지만, 다행히 열차 안에서 표를 확인할 때도 '패딩턴에 가서 확인해라'라며 별 문제 없이 통과. 패딩턴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확인 도장을 받아 패스를 제대로 오픈했다. 다음에는 패딩턴 지하철역에서 한국의 교통카드와 비슷한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하고 지하철로 갈아탔다. 목적지는 워털루.

  1. 이보다 조금 느린 대신 가격은 절반 정도인 '히드로 커넥트(Heathrow Connect)'도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런던 도심으로 들어간다면 그 돈을 내고 히드로 커넥트를 타느니 튜브 피카딜리 라인을 타거나, 버스를 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Back]
2008/03/08 13:04 2008/03/0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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