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이었다. 나는 학교를 향하는 길, 300번 버스 맨뒷자리에 앉아서 전공 리딩 패키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 날은 전공 과목의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고, 나는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도 PC 앞에 앉아 발표와 함께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 작성에 매달렸었다. 보고서를 쓰느라 정작 발표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고, 버스 안에 앉아서라도 살펴보던 참이었다.

 ‘영어로 발표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슬라이드 앞에서 어떤 말을 할지 이렇게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텐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읽던 교재에서 눈을 떼어 무심코 정면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 때였다. 한 여성이 내 시야에 들어왔고, 내 주변의 시간은 갑자기 멈춘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리는 문 바로 옆 자리에서 파란색 코트를 입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내리는 문은 닫혔고 버스는 다시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창 밖으로 비친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서야, 내 주변의 시간은 다시 원래 속도로 돌아왔다. 실제로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뒷모습과 옆모습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절의 N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N은 아니었다. N일리가 없다고, 내 머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N이 이런 곳에 있을 가능성이 희박할 뿐더러, 그녀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N의 마지막 모습과는 사뭇달랐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그녀가 놀랄만큼 닮았던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절의 N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본 그녀의 모습은 결코 현재의 N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N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된 이후에도 우연히 한번 N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라는 노래 가사처럼, 내 모습만 돌아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마 지금의 N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절의 모습도 아니고,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과도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단지 겉모습 뿐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오히려 ‘진짜 N을 마주쳤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N의 모습은 어떤 시간 속에서 멈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는 내 모습 또한 멈춰 있을 것이라고.

 그로부터 만 하루가 더 지난 금요일 저녁, 회의를 마친 뒤 자연스레 이어진 술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헤어져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뮤지컬 맘마미아의 노래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맘마미아’의 뮤지컬 넘버 중에서 최고의 곡이 ‘The Winner Takes it All(이긴 사람만이)’나 ‘Thank You For The Music’이란 데엔 이견이 없지만, 누군가 내게 추천하고픈 한 곡을 꼽아달라고 한다면 아마 ‘Slipping Through My Fingers(내 손에서 빠져 나갔어)’나 ‘Knowing Me, Knowing You(나는 나, 너는 너)’를 선택할 것이다. 공연장에서 매일 맘마미아를 보고 듣던 때, 나는 샘을 연기하는 성기윤의 목소리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샘이 부르는 맘마미아의 노래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은 단연코 샘의 유일한 솔로곡, ‘나는 나, 너는 너’였다.

 맘마미아 한국 캐스팅 음반에는, 이 노래의 한국어 버전이 내가 한창 좋아했던 시절의 바로 그 ‘샘’이, 내가 즐겨 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부른 버전으로 실려있다. 하지만 녹음으로 듣는 그 목소리는 어두운 오페라하우스 한 구석에서 앉아(혹은 서서) 듣던 그 때의 감흥을 되살리기에는 어쩐지 뭔가 살짝 부족하다.

 “나는 나, 너는 너. 어쩔 수가 없잖아. 나는 나 너는 너,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이별. 헤어진다는 건 쉽진 않지만 난 그랬지. 나는 나, 너는 너. 그게 최선인 걸.”

 이 노래의 가사는 최선을 다했고, 어쩔 수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는 면에서 ‘난 후회하지 않아Je ne regrette rien’식 연애 회고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예전에는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으므로,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뜻 그렇게 말하기 망설여진다. 그 당시에 나는 나름의 논리와 그에 따른 결론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지만,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었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 결국 그때 마주친 몇몇 사소한 변수가 내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후회없는 반성은 무책임하다.

 관계에 있어서 괴로움을 겪을 때마다, 나는 예전의 나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노력했고, 좀 더 성숙하고 인정받는 관계를 맺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과연 그때의 나보다 나은 사람인가. 토요일 저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걸으며 최근 내 곁을 오갔던 대화들을 곱씹다가 문득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와 어울릴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본 내 모습의 차이에 있어서는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처럼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자책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많을지 모르겠지만, 후회할 수 있을 때 충분히 해두어야 한다. ‘후회’하는 순간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게 되는 그런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지나치게 후회하며 과거의 불행에 얽매이지 않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후회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후회하기 좋은 순간은 늘, 뒤늦게 찾아온다. 때늦은 후회는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앞으로의 선택을 향한 것이다. 적어도 관계의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 하지만, 그 변하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나는 과거 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나는 나 너는 너, 어쩔 수가 없지 않냐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말하는 샘에게 소피는 ‘난 아저씨와는 다르다’고 반박하고는 샘을 홀로 남긴 채 뒤돌아 사라진다. 그 뒤에 다시 이어지는 샘의 후렴구는 자기 변명의 넋두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후회의 표현에 가깝지 않을까. 바로 그 덕분에 샘은 다음 번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하고, 마지막에는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음껏 후회할 때이다. 그때 너를 잡지 못한 것도, 첫 만남의 알듯말듯한 시선 교환 속에서 당신에게 먼저 손내밀고 말 걸지 못한 것도, 발표를 위해 강의실 앞에 나와 그대들 앞에서 버벅이는 영어로 혼잣말을 해야 했던 것도.

2009/11/29 16:35 2009/11/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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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Posted 2009/06/20 00:42, Filed under: 감상/음악 이야기
헤레베헤의 포레 레퀴엠

헤레베헤의 포레 레퀴엠. Harmonia Mundi France. HMC901771

 헤레베헤1의 포레 레퀴엠 음반을 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를 시청광장에서 지켜본 뒤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지난 3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살까 말까 고민했었던 음반인데, 결국 이번에 샀다. 아는 이의 죽음이 늘어갈 수록 레퀴엠 음반도 쌓여간다. 나의 첫 헤레베헤 음반. 그리고 내가 산 ‘레퀴엠’ 음반도 이것으로 3종 4개가 된다.

 헤레베헤가 이끄는 포레의 레퀴엠은 내가 갖고 있는 다른 어떤 레퀴엠보다도 아름답다.(아직 레퀴엠을 실연으로 들어볼 기회는 없었다.) 웅장하다고는 할 수 있어도 경건함과는 거리가 있는 베르디의 ‘콘서트용’ 레퀴엠 미사나, 경건하다 못해 살짝 우울하기까지 한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미완성 레퀴엠에 비해 포레의 레퀴엠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듯 하다. 거기에 군더더기와 기름기를 쫙 빼버린 헤레베헤의 스타일은 구조적 아름다움에 더해 어떤 숭고함까지 느껴지도록 만든다.

In a celebrated statement about his Requiem, Fauré admitted that he saw death ‘as a happy deliverance, an aspiration towards happiness in the hereafter, rather than as a painful transition… Perhaps I also instinctively tried to get away from the well-trodden paths, after accompanying funeral services on the organ for so long! I’ve had them up to here. I wanted to do something different.’ He added, in a letter to Maurice Emmanuel, that ‘my Requiem was composed for nothing… for pleasure, if I may venture to say so!’

- from linernote by Jean-Michel Nectoux

Translation: charles Johnston

 포레의 레퀴엠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죽음에 대한 이런 포레의 생각 때문 아닐지.

 들으면서 한곡 한곡 모두가 참 좋다고 느꼈다. 어두운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아침을 여는 곡으로 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그러기엔 ‘죽은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로 시작되는 가사가 너무 무섭기는 하다. 아무렴 어떠랴 싶기도 하지만… –_-) 최근에 들은 성악곡들은 대체로 독주곡이었기에 오랜만에 듣는 제대로 된 합창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헤레베헤가 녹음한 포레의 레퀴엠은 두 종류가 있다. 헤레베헤는 1892년 실제 장례식에서 포레 본인의 지휘로 초연된 오리지날 실내악 버전인 ‘1892 버전(Original version, Madeleine version 이라고도 불린다)’을 1980년대에 녹음했고, 포레가 나중에 콘서트용으로 개작한 ‘1901 버전(1901 version for full orchestra)’을 13년 뒤인 2002년에 새롭게 녹음했다.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잘은 모르지만 라이너 노트에 따르면, 두 버전은 곡의 편성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892년의 오리지널 버전 대신 1901 버전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쪽 녹음이 좀 더 최근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다름아닌 앨범 커버의 영향이 컸다. 새카만 바탕에, 가장 아래에는 독특한 모습으로 누운 여성의 조각이 있는 표지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버전의 음반 표지도 인상적이긴 하다. ‘레퀴엠’에 걸맞게 좀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음반을 구입 한 후 확인해보았더니 표지 사진에 담긴 것은 ‘성 체칠리아’라는 작품이었다. 성녀 체칠리아(또는 세실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성인이자 순교자다. 위키피디어를 항목에서 그녀에 대한 일화를 살펴본 뒤에야 왜 이 조각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체칠리아에게는 뜨거운 열기가 나는 목욕탕에 갇혀 쪄 죽는 처형법이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체칠리아는 목욕탕에 들어가서 24시간이나 갇혀지냈다. 그녀가 죽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병사들이 문을 열어보았는데 체칠리아는 죽기는커녕 멀쩡히 살아있었다. 이에 당황한 알마치우스는 이번에는 이전의 순교자들과 똑같이 참수형에 처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형리가 3번이나 그녀의 목을 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모진 고통 속에서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그녀는 오른쪽 손가락 3개와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자기는 삼위일체인 하느님을 믿고 그를 위해 죽는다는 것을 표시하여 자신의 굳센 믿음을 알렸으며, 교황에게 자신의 집을 교회로 개조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 말을 남긴 후 3일이 지나 4일째 되는 날, 체칠리아는 순교하였다.

나중에 사람들이 그녀의 유해를 매장하였는데, 821년 교황 파스칼 1세가 그 무덤을 다시 열어 보니, 시신이 조금도 썩지 않고 살아 생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유명한 손가락 형태도 그대로였다고 한다. 이에 감복한 교황은 정중히 예식을 갖추어 그녀를 성녀로 인정하고 그녀에게 봉헌된 성 체칠리아 대성당의 지하 묘소에 안치하였다.

- 위키백과, ‘체칠리아’ 항목에서

St Cecilia's Martyrdom

산타 체칠리아 성당 내 지하 성 체칠리아 묘소에 있는 마데르노의 조각상.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어 프랑스어( http://fr.wikipedia.org/wiki/Fichier:Tombeau_sainte_cécile.jpg )

성 체칠리아 조각상 자세히 본 모습

자세히 본 모습. 사진 출처는 위키 피디어 공용( http://en.wikipedia.org/wiki/File:St_Cecilia%27s_Martyrdom.jpg )

  표지 속 조각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바로크 조각가라는 스테파노 마데르노Stefano Maderno의 조각 작품으로, 로마에 있는 산타 체칠리아 성당 안 그녀의 묘소에 있는 것이다. 순교 전승이 대부분 그렇듯 조금 으스스하기도 한데, 마데르노의 조각은 그녀의 순교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자세하게 찍은 사진을 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목에 그어진 금(도끼자국?), 그리고 손가락의 모습2이 순교 설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알고 보니 좀 더 무서워졌다.;
 가톨릭에서 성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 성인으로서, 흔히 오르간이나 류트,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3 이 때문인지 브리튼, 스카를라티, 구노, 퍼셀 등 유명한 작곡가들이 그녀와 관련된 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성 체칠리아와 포레의 레퀴엠이 연관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음악의 수호 성인’이어서 선택이 되었거나, 단순히 시각적 효과 때문에 선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녹음에서 헤레베헤는 라틴어의 프랑스식 발음을 채택했고, 포레의 지침에 따라 오르간을 대신해 하모니움을 사용하고 있다. 헤레베헤의 포레 레퀴엠은 전곡 모두가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는 피에 예수Pie Jesu 부터 아뉴스 데이Agnus Dei를 지나 리베라 메Libera me에 이르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하프 소리가 돋보이는 마지막 곡 In paradisum도 빼면 아쉽다. 한곡만 꼽으라면 아뉴스 데이를 꼽겠다.

  1. Philippe Herreweghe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겐트 출신의 지휘자다. 그의 이름은 예전(한국에 그가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에르베그’라고 표기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필리프 헤레베헤’ 가 공식적인 표기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 하다. 겐트가 네덜란드어권인 플랑드르(플랑드르Flandre는 불어식 표기이고 네덜란드어로는 블람스Vlaams)지방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르는게 맞을 것 같으나 네덜란드어 한글표기법을 잘 모르는 관계로 ‘헤레베헤’가 맞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얼마전 KBS 2TV 클래식 오디세이에서 헤레베헤와 인연이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가 출연했는데, 그녀는 그를 ‘헤레베게’라고 불렀다. 독일식 발음인지? [Back]
  2. 위키백과 한글 항목에는 ‘오른손 3개와 왼손 엄지’라고 나와있는데, 영어 항목에는 그냥 ‘한 손은 손가락 세 개를 펼치고, 다른 한손에는 하나만을 펼쳤다(on one hand she had three fingers outstretched and on the other hand just one finger)’고만 나와있다. [Back]
  3. 가톨릭 인터넷 Goodnews 성인정보 - 체칠리아(11.22) 마지막 문단 참조. [Back]
2009/06/20 00:42 2009/06/2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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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ed from Free animal sex. 2011/08/24 00:08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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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골든벨 소녀 2009/06/23 10:25 Delete Reply

    좋은노래 잘듣고 갑니다. 포레레퀴엠 좋아요. 이 CD도 지를듯.ㅎㅎ
    몇일있다 선생님 B단조미사도 하시던데..

    1. Re: # 달크로즈 2009/06/24 18:14 Delete

      골든벨 소녀가 누군가 했었어요. ^_^;
      아아, 저도 헤레베헤 음반 여러개 지르고 싶은데(바흐 칸타타나 미사곡, 브루크너) 돈이 없어서... 흑흑. ㅠ_ㅠ (요즘 돈 없다는 말을 자주하네요. 휴.)

      넵. 모테트 합창단이랑 같이 하는 것 같더라구요. 헤레베헤의 바흐 B단조 미사를 얼른 사듣고 예습을 한 뒤에 공연 보러 갈까 싶습니다. 둘리님 가실 듯 싶은데 혜령님도 함께 하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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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밤11시. 이젠 밤마다 주차장이 변하는 아파트 단지 내 배드민턴장에서 바라본 정월 대보름 밤 하늘은 흐렸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보름달은 구름 사이로 간간히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안하던 짓을 하려니까 하늘도 도와주지 않는가보다. 그래도 언듯 비치는 보름달에 간단히 소원을 빌고 친구들에게 ‘더위를 파는’ 전화를 돌린 다음, 동네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나서는 아이팟을 귀에 꽂은 채 단지 안을 조금 걷기로 했다. 이렇게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온 것이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고등학교 이후로는 동네를 이렇게 차분히 걸어 다닐 일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특히 최근 3-4년 안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걷다보니 조금 감상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관리사무소 옆을 지나니 농구대가 있는 조그마한 운동장이 보였다. 7-8년전만 해도 밤 늦은 시간까지 농구공 튀는 소리가 들렸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공을 갖고 노는 아이들 대신 자동차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는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단지에 차가 늘어 주차공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겠지만, 이젠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낮 시간에 다시 운동장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예전에 비해 확실히 뛰어노는 아이들은 줄어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일마다 단지 운동장이나 주차장에 나와서 친구들과 함께 공을 갖고 놀거나,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할 때까지 얼음땡 같은 놀이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아파트 단지에 아이가 줄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이들이 이젠 학원에서 공부하거나 컴퓨터와 노느라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단지 상가를 기웃거리며 예전의 그 가게들이 그대로 있는지를 살펴보고 단지 구석구석에 숨은 놀이터를 한번씩 들러갔다. 변한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안도하고 있는데 문득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를 수상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CCTV 카메라들이었다. 그래, 1-2년쯤 전에 동네에 CCTV를 설치했었지. 예전과 가장 달라진 동네 풍경이 CCTV라니. 처음에는 내 움직임이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생각에 좀 불쾌했으나, 며칠 전에 검거되어 뉴스를 가득 메운 연쇄살인범 소식을 생각해보면 현명한 선택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이 아파트 단지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변했다.


Blake's Shadow 전시 도록

Blake's Shadow 전시 도록

 오랜만에 서울대미술관에 다녀왔다. 작년 8월 시그마 폴케 전에 갔던게 마지막이었으니 실로 반년만이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예술적 유산 전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전시 막판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미술관에 찾아가는 습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매번 올 때마다 조금씩 풍광이 바뀌는 서울대학교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들어갔다. 미술관에 도착해 길다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리셉션리스트 Y씨가 나의 의외의 등장에 놀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중앙 코어 계단을 향하면서, 며칠 전에 동네를 거닐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 한때 참 익숙했었고, 정말로 좋아했던 공간을 오랜만에 둘러본다는 것. 어느새 2년이 흘렀다.

 제6전시실의 전시를 둘러보며 코어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미술관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3층 코어 전시실에 도착하자 김창렬의 ‘회귀 1993’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창섭, 신영상, 정탁영, 문학진.. 조금씩 위치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있는 그림들을 보니 반가움에 마음이 뛰었다. 그중에서도 마치 형제지간 같은 느낌을 주는 정탁영 선생님과 신영상 선생님의 큼지막한 두 그림이 특히 반가웠다. ‘윌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예술적 유산’전을 보면서는 예상과 다른 전시 구성에 조금 놀랐다. 전시를 보러 오기 전에는 당연히 ‘윌리엄 블레이크 전’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와서보니 블레이크 전이라기보단 블레이크가 영국 미술계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전시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영문 전시 제목이 ‘Blake’s shadow’였던 것.) 60여점의 전시작품 가운데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은 열점이 채 안되었고, 나머지는 그에게 영향을 받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었다. 드로잉도 많고, 작은 사이즈의 작품이 많아 포만감이 느껴지는 전시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흥미롭고 좋은 전시였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주제에 전시 설명도 충실했으니. 특히 작년에 밀레이 전시를 보고 난 이후 공부해 두었던 라파엘전파가 나올 땐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헌트’, ‘매독스 브라운’, ‘번 존스’에 ‘로제티(언급만 될 뿐 전시된 작품은 없었다)’까지 낯익은 이름들이 하나씩 언급되더니 밀레이의 그림도 등장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조그마한 그림 두 점. 이렇게 또 만나는구나. 그리고 마지막 섹션에는 또 한번 낯익은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현대작가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아니쉬 카푸어는 1991년에 터너 상을 받은 작가로, 다음달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in-i (안무가 아크람 칸과 프랑스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함께 해 화제가 된 무용공연)에서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작년 8월 in-i 공연 정보를 접하면서 알게 된 작가인데, 이렇게 전시작품으로서 만날 기회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MoA Vision 1 전시도 재미있었다. 블레이크의 그림자 전과는 비교될 정도로 큼지막한 작품들이 많았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가는 이지은씨.

 전시를 다 둘러 보고 난 뒤 바깥쪽 계단을 따라 미술관을 다시 한바퀴 돌았다. 동네 아파트단지처럼 미술관도 대체로는 예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예전과 달라진 모습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미술관은 이제 막 두번째 전시를 앞두고 있었고, 미술관의 많은 공간들이 아직 완전히 정돈되지 못한채 만들어진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낮이 되면 코어 부분 천장에 뚫린 채광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3층 전시실에도 ‘출입문’이나 ‘칸막이’따위는 존재하지 않은 채 건물 전체 공간이 단절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 렘 쿨하스OMA가 이 건물을 설계 했을 때 의도했었던 바 그대로였을 것이다. 지금은 3층 전시실에 칸막이가 있었다. 두개의 전시를 구분하고 전시 동선을 정돈하기 위함일 것이다. 지하 2층에는 카페가 들어섰고 미술관치곤 많이 뚫려있었던 창문들에도 대부분 블라인드나 커튼이 쳐졌다. 코어 천장의 채광창도, 바깥 계단이 훤히 들여다보이던 강당 옆면의 유리창도, 3층 전시실에 뚫린 창에도. 예전에 나는 전시 설명을 마치고 난 뒤 종종 바로 1층 로비로 돌아가지 않고서 미술관 곳곳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3층 바깥계단 앞 창문으로 대학교 정문앞을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유난히 느리게 움직이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고, 2층 강의홀에 앉아있다가 어떤 건축학도를 도와 줄자로 강의홀 사이즈를 재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한양대 건축대학원에서 왔다는 그 여학생은 강당이나 연주회장, 공연장의 음향설계를 공부하고 있었는데-당시는 미술관이 완공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이라 미술전시를 보러온 사람들 만큼이나 렘 쿨하스의 건물을 보러 온 건축학도들이 많았다- 공간의 형태와 재질을 어떤 공식에 넣으면 이 곳의 음향이 어떤지 수치로 알 수 있다고 했었다. 난 당시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기에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엘 크로키(El Croquis)에서 건물을 취재하러 와서, 건물 사진을 찍기 위해 강당 옆면 전체에 드리워진 커튼을 다 올렸던 적도 있었다. 강렬히 내리쬐는 가을 햇빛이 강당을 메우던 그 풍광은 인상적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는 그런 광경일 것이다. 렘 쿨하스가 다시 와서 미술관 공간을 둘러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설계자의 의도는 설계자의 의도일 뿐, ‘비가 샌다는’ 빌라 사브아의 경우처럼 유명한 건축가가 만들었다고 해서 실제로 그 공간을 살아내는 사람들 입장에서 편안하라는 법은 없다. 모든 삶의 공간은 누적되는 일상의 시간만큼 변해간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도, 다른 누군가 살고 있는 그 공간도 매일 하루치의 삶이 보태지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처음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공간이란 다시말하자면 죽어있는 공간일 것이다.

2009/02/15 14:21 2009/02/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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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팬을 읽었다. 이 ‘자라지 않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책으로는 잘 읽히지 않는다. 잭 자이프스는 펭귄 클래식 판에서 서문의 첫 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는 주요 인물인 피터 팬 덕분에 유명해졌으나 오늘날까지도 원작으로는 잘 읽히지 않고 있다. 물론 수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피터 팬을 알고 있지만 그건 소설을 통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바르 갈리엔, 진 아서, 메리 마틴과 같은 여배우들이 피터 팬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연극 무대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피터 팬을 접한다. 사실 어린이와 어른 대다수가 피터 팬과 그 주변 인물들을 알게 되는 건 디즈니 도서, 텔레비전 각색물, 피터 팬 관련 각종 상품, 피터 팬의 현지어 상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후크」를 통해서다. 따라서 J. M. 베리의 소설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Peter Pan in Kensington Gardens』(1906)과 『피터와 웬디』(1911), 희곡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Peter Pan, or The Boy Who Would Not Grow Up』(1928년 최종본)을 원작으로 읽어 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피터 팬을 원작으로서는 읽어본 일이 없었다.(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책으로 피터 팬을 읽었던 것도 같지만 아마 그건 어린이용으로 아주 짧게 각색된 버전이었던 듯 싶다.) 심지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 팬’조차 보지 않았으나, 어린 시절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피터 팬을 알고 있었다. 피터 팬과 웬디. 팅커 벨. 그리고 후크 선장까지도. 피터 팬 책이 잘 읽히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별 다른 노력없이 다른 경로를 통해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가장 최근에 접한 피터 팬의 ‘또다른 버전’은 공연장에서 일할 때 접한-그리고 요즘도 공연하고 있는- 서울뮤지컬컴퍼니의 가족 뮤지컬 ‘피터 팬’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일하며 그 공연을 지켜봤을 때 ‘보나마나 애들 상대로 돈 좀 벌어보려고 급조한 뮤지컬이겠지’하고, 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하지만 원작-뮤지컬의 원작은 아마도 소설 ‘피터와 웬디’가 아니라 희곡 ‘자라지 않는 피터 팬’이겠지만-을 다 읽은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뮤지컬은 극을 아동용 뮤지컬로 바꾼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원작에 충실했고, 전반적으로 꽤 준수한 수준의 공연이었다. 그리고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영화 ‘파인딩 네버랜드’도 있다. 조니 뎁의 새영화로서 몇 해전 꽤 기다려서 보았던 ‘파인딩 네버랜드’는 피터 팬의 작가인 J.M. 베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였다. 제임스 매튜 베리는 꽤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잭 자이프스의 서문에도 J.M. 베리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길게 나온다. 베리의 일대기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와 실비아 루엘린 데이비스 가족과의 인연을 맺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파인딩 네버랜드’의 직접적인 줄거리가 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자가 상상의 세계를 펼쳐내는 장면. ‘네버랜드’는 판타지 소설에 종종 나오는 다른 차원의 세계, 아예 완전히 만들어져 가공된 채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마치 현실의 그림자처럼 존재하기는 하지만 명확하지 않고 아이들의 상상에 기대어서만 드러나는 세계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일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동화 같은데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것,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신선하고 상상하기가 편한 그런 점. 또 한편으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억 속 캐릭터들과 소설 속 캐릭터를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피터 팬의 성격과 그것을 별다른 불평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웬디와 잃어버린 아이들. 후크 선장은 내 머릿속에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악역답지 않은 악역이었다. 물론, 악역답지 않아도 악역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리고 마지막 장인 제17장, ‘웬디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달라진 점도 눈치 채지 못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의 피터 팬이 나타나 웬디의 딸 제인을, 또 제인의 딸 마거릿을 데리고 매년 봄맞이 네버랜드로 떠난다는 마지막은 참 좋았다. 그 동안 접했던 여러 애니메이션, 소설 등에서 접했던 마무리 방식의 시초가 되었을 법한 그 마지막.

펭귄 클래식 코리아 판 피터 팬에는 소설 『피터와 웬디』과 이어서 처음으로 피터 팬이 등장하는 작품인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도 함께 실려있다. 이 짧은 소설 속 피터 팬은 우리가 아는 피터 팬과는 사뭇 다른 또다른 버전의 피터 팬이다. 런던의 켄싱턴 공원과 하이드 파크를 구분 짓는 서펜타인 호수 속 저 멀리 있는 섬에서 살아가는 피터 팬. 조금 무서운 아서 래컴의 삽화 때문인지 『피터와 웬디』보다는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피터 팬이 두번째로 엄마를 찾아 돌아갔다가 결국 닫힌 창문에 좌절하고 돌아오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피터와 웬디』에서 한차례 언급되는 말의 배경이 된다.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 동상

켄싱턴 공원에 있는 피터 팬 동상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은 읽는 내내 내내 딱 1년전의 영국 여행이 떠올리게 했는데, 그건 켄싱턴 공원이라는 장소 때문이었다. 런던에 머물렀던 일주일. 유일하게 가봤던 런던의 로열 파크가 바로 켄싱턴 공원Kensington Gardens이었다. 숙소 자체가 사우스 켄싱턴 Queens Gate 로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Queens Gate를 따라 죽 올라가기만 하면 바로 켄싱턴 가든의 Queen’s Gate로 이어졌다. 하이드 파크나 세인트 제임스 파크 같은 다른 공원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끝내 가보지 못했던 기억과 더불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켄싱턴 가든의 추억. 오랜만에 여행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

동상을 둘러싼 기단부 앞쪽에 붙어있는 판. 1912년부터 이곳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좀 멀리서 본 모습

조금 멀리서 본 모습. 이날 함께 했던 일행도 찍혔다.

동상 옆에서

1년 전의 모습인데 왠지 조금 낯설다.

피터 팬 아래 디테일을 좀 더 가까이에서

당시엔 이게 '웬디와 잃어버린 아이들'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에 나오는 요정들이었다.

피터 팬

마지막으로 찍어 둔 피터 팬.

- J.M. 베리의 ‘피터 팬’ 작품들은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나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기 때문에 아래 링크된 곳을 통해 원문을 읽을 수 있다.(모두 영어)

『피터와 웬디』 http://www.gutenberg.org/etext/26654

『켄싱턴 가든의 피터 팬』 http://www.gutenberg.org/etext/26998

희곡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 http://gutenberg.net.au/ebooks03/0300081h.html

2009/01/24 01:55 2009/01/2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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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9/01/24 02:18 Delete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하나 썼다. 사진을 제외한 글 대부분은 Windows Live Writer로 써서 올린 것. 참, a77ila님이 쓰신 이 책에 보면 '후크 선장'과 'Thesaurus' 이야기가 나온다. 읽으면서 이 부분을 찾아보려 했는데 알고보니 그 부분은…

  2.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9/08/04 00:25 Delete

    펭귄클래식판 '피터 팬'에 서문을 썼으며, 작년 '동화의 정체'라는 책이 번역출간 되기도 한 잭 자이프스가 엮은 책. 근데 원제와 비교해 안드로메다로 간 듯한 제목은 그렇다쳐도, 원래 책 구성의 절반정도는 날려먹은 이 이상한 편집은 대체 뭘까? 독점계약이 아깝다.정말!

  1. # lckbless 2009/01/24 12:42 Delete Reply

    일행은 설마 그 비글의 주인분?!!

    1. Re: # 달크로즈 2009/01/24 14:11 Delete

      무슨 소리야. -.-;
      영국 여행에서는 호스텔 같은 방 사람들끼리 하루,이틀씩 같이 다니곤 했었지!

  2. # lckbless 2009/01/25 01:33 Delete Reply

    아 영국에서 찍은 사진이구나 ㅡㅡ; 아까는 글을 자세히 안 봐서...

  3. # 김미들 2009/01/27 01:45 Delete Reply

    오랜만의 포스트네요! <모두 영어>의 압박..

    1. Re: # 달크로즈 2009/01/28 02:31 Delete

      아.. 그게 원작은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어도 번역본은 좀 이야기가 달라지는지라.. ㅠ_ㅠ 누가 번역좀 해서 퍼블릭 도메인에 기증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미들님! :)

  4. # 보라 2009/05/06 16:37 Delete Reply

    오와, 나도 4월인가, 그즈음에 강의 과제로 읽은적이 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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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 대해 고민 한번 안해본 청춘들이 있을까, 지금 현재에 대해 단 한치의 불안감도 느껴본 적 없는 청춘이 있을까. 아마 없을거다. 자신이 제도권 안에 서있든지, 아니면 밖에 있던지. 아니 어디 청춘만 그러할까. 어려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누구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그 시간과 장소, 고민거리와 해법은 각자 다를지라도, 누구나.


 보라님의 첫 다큐멘터리 '로드 스쿨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라님을 비롯한 주인공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로드 스쿨러'라고 부른다. '로드 스쿨러Road schooler'는 흔히들 학교를 자퇴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을 지칭하는 기존의 용어, '홈 스쿨러Home schooler'에 대응해 만들어낸 말이다. 그들이 '홈 스쿨러'가 아니라 '로드 스쿨러'인 이유는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들에게 학교를 대신하는 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학교는 거리이고, 울타리 밖의 세상이다. 다큐멘터리는 칠판 앞에 앉아서가 아니라 길 위에서 자신의 발을 직접 딛고 배워나가는 길을 선택한 '학생'이 아닌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한 청소년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담긴 다큐멘터리를 주욱 보고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내게 '좋은 다큐멘터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좀 고민이 되겠지만. (작년 EIDF의 마스터 클래스를 들으면서 그 비슷한 고민을 했었던 거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 다만 예전부터 갖고 있는 한가지 생각은 이렇게 한창 보고 있는 와중에도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좋은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영감을 준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책이나 영화, 음악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나는 이 '로드 스쿨러'를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학교를 떠난 계기, 제도권 교육 밖의 경험담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을 듣고 있으니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때 그 공간에서 어떠했는지 무얼하고 있었는지. 이들이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던, 그래서 떠났던 '입시교육'을 나는 왜 떠나지 않았는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것이 가장 본질적인 해답일까 곰곰히 고민해보니 딱 한가지가 나왔다. 거두절미하고, '그 당시 나는 그렇게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았다'가 아마 가장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화면 속에서 거침없이 말을 하는 로드 스쿨러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모습에선 당시 내가 갖고 있지 않았던 어떤 '열정'(사실 이 '열정'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딱히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같은 것이 있다. 아마 학교를 벗어나게 된 데에는 순수한 자의 뿐만 아니라 타의도 작용한 결과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무언가 다른 걸 원했고 그래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내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깨달은 진리가 있는데, 지금과 다른 것을 자기 스스로가 간절히 원하고 또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다면.


 갑자기 오래 전에 봤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의도에 있었던 한 행사장에서,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가 유현이 '작가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저희 부모님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유 방임주의'셨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죠." 내 부모님들도 '자유 방임주의'까지는 아니지만-그러기엔 잔소리가 심하고, 이것저것 꽤 시킨 편이니- 그래도 결국 자식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편이다. 지금와 돌이켜보건대, 이건 꽤 행운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자라날 수 있었을테니까.

내 학창시절은 딱히 즐겁지는 않았지만, 괴롭지도 않았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면서부터 기나 긴 휴학의 길로 들어섰는데(이 부분은 제대로 이야기 하자면 정말 길어질테니까 줄이겠다) 내 방황.. 아니 제도권에서 벗어나 내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천천히 남들과 타이밍을 다르게 가져가기 시작했고, 그래서 많은 질문을 받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속 한백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게 아마도 그 이유에서 일거다.
내 자신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진 거잖아.
왜냐면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일반적인 길을 가니까,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아, 그리고 학교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잖아.
근데 학교에서 나오게 되면, 우선 주변에서 질문을 되게 많이 하잖아.
너는 '왜 학교를 그만두냐' '니가 하고 싶은 건 뭐냐'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도 끊임없이 나는 누군지 아니면 내가 뭘 하고 먹고 살건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때문에.
훨씬 더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자부심이나 자신감도 더 붙는 것 같아.
내가 선택한 길을 가는 사람이랑 남이 준 길,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이랑은 다르니까.

 - 한백, '로드 스쿨러'(2008) 중에서
 나 또한 학교를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변에서 지겹도록 "왜?","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을 받았다. 때로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때로는 어떻게든 대답해야 했다. 단지 대답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납득시켜야 하는 대상은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으니까. 뒤쳐지고 있다는 초조함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맞서 합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질문받고 생각하고 납득하고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래도 예전보다는 한결 편안해졌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거라는 그런 자신감도 생겼고. 이 다큐멘터리와 내 정서가 만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였던 것 같다.

 '중복되는 인터뷰'도 보이고, 이래저래 완전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은, 조금은 거친 '첫' 다큐멘터리지만,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굵고 선명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감 제로'로 직접 담아낸 영상이 주는 솔직함도 매력적이다. 각자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결국 울타리 밖으로, 거리 위에 서게 되는 때가 있다. ‘앞으로 뭘 할 거냐’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남이 정해준 길을 따라 걷고, 남이 마련해준 답에 따라 사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러니까 결국 스무살도 채 넘지 않은 나이에 길에서 배워나가는 법을 배운 '로드 스쿨러'들은, 다른 이들보다 뒤쳐진 게 아니라 오히려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2008/09/25 02:31 2008/09/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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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8/09/25 05:22 Delete

    보라님이 만드신 첫 다큐멘터리, '로드 스쿨러'에 대한 감상을 썼다. '길 위에서 보고, 듣고, 고민하는 것 - 로드 스쿨러'.

  1. # 보라 2008/09/25 12:05 Delete Reply

    앗, 이런 친절할데가!
    잘보셨다니 너무너무 다행이여요. 그리고 따끔한 목소리도 잘 담아놓을게요. 갑자기 얼른 '편집'하고 싶은 욕구가(사실 스킬도 없지만 하하).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되죠? 엔디님의 글과 함께 올려놓고 싶네요.
    부산영화제 언제가셔요? 전 아직 프로그램도 안챙겨놓았는데..허허. 감사합니다(진심으로)!

    1. Re: # 달크로즈 2008/09/25 13:31 Delete

      에고, 소심하게 덧붙인 거였는데 따끔하게 보였나요~; 암튼 저야말로 재미있게 잘 봤어요. 아직 최종 완성판이 아니었던거군요. 제 글은 물론, 마음껏 퍼가셔도 됩니다. :)
      부산영화제는 아마 3~7일쯤 있지 싶은데, 지금 제 문제는 숙박대책을 전혀 세워놓지 않았다는 거에요. ㅠ_ㅠ 숙박까지 생각하면 정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또 찜질방 전전하긴 싫은데. 고민 중 입니다.;
      다큐멘터리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왔더라구요. 보라님은 언제 가실 생각이세요? 기회가 된다면 뵈면 좋겠어요(진심으로)!

  2. # yuna 2008/09/26 00:46 Delete Reply

    스스로 선택해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면, 좋든 싫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 공감합니다.
    (그래서 '불안'이라는 책이 더 와닿았는지도? 헤헤)

    1. Re: # 달크로즈 2008/09/30 11:00 Delete

      네, 어찌보면 사서고생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뭔가 뿌듯하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것 같아요. 힘들지만. :)

  3. # jacopast 2008/09/26 18:57 Delete Reply

    하아. 언제 이런 걸 다 챙겨보십니까.

    1. Re: # 달크로즈 2008/09/30 11:03 Delete

      작호님은 언제나 일에, 야근에 바쁘실 듯 합니다만,
      저는 이제 담달 중순까지 시한부 백수라 시간이 남는 답니다.
      후후.. 백수생활을 즐겨야지요~

  4. # 희도리 2008/10/17 10:22 Delete Reply

    아름다운재단...^^ 간사예요. 로드스쿨러...잘 봤습니다. 생각할 기회를 주신 달크로즈님 감사해요. ^^

  5. # lckbless 2008/11/07 13:45 Delete Reply

    음, 얼마전에 Spyro gyra의 노래를 다운받으려 하는데 1997년에 낸 앨범의 이름이 Road scholars 더라구 처음 보고 road schoolers인줄 알고 깜짝 놀랐음.......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ㅡㅡ;

    자네도 퓨전재즈를 좋아하니까 한 번 들어보던가! 내가 알기로는 스파이로 자이라가 퓨전 재즈의 시초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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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한 첫번째 소나타

Posted 2008/07/14 15:14, Filed under: 감상/음악 이야기
풍월당 5주년 기념 할인행사의 결과물

풍월당 5주년 기념 할인행사의 결과물.


 며칠전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에서 5주년을 기념해 (이제는 거의 정기 세일이나 다름없어진) 할인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녀왔다. 작년에 근처로 확장 이전한 새 풍월당은 엄청나게 넓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쾌적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감상실이 따로 생겨 가끔씩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것도 그렇고,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도 좋은 변화다. 각각의 음반들도 기본 래핑 외에 재사용이 가능한 비닐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세일기간이라 가게 안에는 원래 이정도로 단골이 많았나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무척 사람이 많았다. 직원들도 정신없이 바빠보였다. 잘 정리된 신보들로 가득찬 가게 안을 한바퀴 돌았는데, 그 후끈한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많은 음반을 집어버린 후였다. 전품목 20% 할인이라니, 당분간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조금만 덜어내고 그냥 사버렸다. 사진으로 보이다시피 앞으로 당분간은 음반을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 이번에 산 음반들을 모아놓고 보니 유난히 Harmonia Mundi 레이블 음반이 많다. 거의 90% 정도 되는데, 어쩌면 바뀐 내 취향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5권째에 접어든 레이첼 포저와 게리 쿠퍼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집에 돌아와 이번에 산 것들을 천천히 아껴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서, 가장 먼저 들어볼 음반을 신중하게 골랐다. 첫번째 타자는 역시 나를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레이첼 포저와 게리 쿠퍼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제5권. 1집에서는 충격과도 같았던 연주가 5집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편안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리고, 제법 익숙해진 지금에서도 여전히 신선하다. 슬슬 빠른 악장 뿐만 아니라 느린 악장도 좋아지기 시작하니, 이제서야 음반 전체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조금 기쁜 마음도 든다. 이제 남은 건 남은 전집도 어서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

 이번 5집에는 KV 305, KV 403, KV 31, KV 306 이렇게 네 곡이 담겨 있다. 우선 가장 마음에 들었던 트랙은 소나타 A장조 KV 305의 두번째 악장, Thema: Andante grazioso. 짧은 도입부가 지나간 후, 포르테피아노가 길게 솔로 연주를 하는 부분과 그 직후 바이올린이 다시 연주를 시작하는 부분이 좋다. 부담없이 울리는 쿠퍼의 피아노 소리, 꾹꾹 누르듯이 그러나 미끄러지듯이 매끈하게 울리는 포저의 바이올린 소리. 천천히 연주를 들으면서 음반에 적힌 라이너노트를 읽다 보니 KV 403에 얽힌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 Some four years later, on 4 August 1782, Mozart was married to Constanze Weber in St. Stephen’s Cathedral in his new home town of Vienna. He began composing several violin sonatas for her, at the very same time that the ‘historical’ Sunday afternoon concerts organized by Baron Gottfried van Swieten had aroused his interest in the music of Händel, Bach, and the latter’s eldest sons Wilhelm Friedemann and Carl Philipp Emanuel. From that time onward, Constanze had become fascinated by the concept of fugue: she bagged Wolfgang to compose some music in this idiom. Perhaps Mozart also wanted to shed a more glamorous light on Constanze by writing fugues and contrapuntally inspired pieces for her, because Leopold had expressed violent opposition to the marriage. It was against this background that Mozart composed Sonatas KV 402 and KV 403. The surviving manuscript of KV 403 bears Mozart’s notation: “Sonate Première. Par moi W. A. Mozart pour ma très chère épouse.” [“First Sonata. By me, W. A. Mozart, for my dearest wife.” ] Mozart did not complete the piece, and he probably never intended it for publication. He only wrote out the first twenty bars on the last movement. Mozart’s student, abbé Maximilian Stadler, who helped Constanze manage the music left by Mozart after his death, completed the piece by working the Finale out to a complete movement of 124 bars.
 
- from linernote:
The Necessity of Travel
by Clemens Romijn
(Translation: David Shapero)
(…) 4년여가 지난 1782년 8월 4일에 모차르트는 새로운 거처가 있는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Stefansdom)에서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을 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바이올린 소나타를 몇 곡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시기에 고트프리트 판 슈비텐 남작이 주최한 일요일 오후의 ‘고음악’ 콘서트가 열려 헨델과 바흐, 그리고 바흐의 장남과 차남인 빌헬름 프리데만과 카를 필립 에마누엘의 음악에 대한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때 이후로 콘스탄체는 푸가의 형식에 매료되었고, 볼프강에게 이 형식대로 음악을 작곡해달라고 청했다. 모차르트 또한 그녀를 위해, 아내에 대한 악상을 담아 푸가와 대위법 형식의 음악을 작곡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아버지 레오폴드가 그들의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모차르트는 소나타 KV 402와 KV 403을 작곡했다. KV 403의 현존하는 필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모차르트의 주석이 달려있다: “Sonate Première. Par moi W. A. Mozart pour ma très chère épouse.” [“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만든 첫 번째 소나타.”]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않았고, 출판할 생각도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마지막 악장은 단 스무 마디만을 쓰고 말았다. 콘스탄체가 모차르트 사후 남겨진 작품들을 관리하는 일을 도운 모차르트의 제자, 막시밀리안 슈타틀러 신부가 마지막 악장을 124 마디의 완전한 악장으로 마무리하여 소나타를 완성했다.

- 라이너 노트:
클레멘스 로메인, ‘여행의 필연성’ 중에서.1

 KV 403. 모차르트가 아내를 위해 작곡한 첫번째 소나타. 이 곡에는 어쩌면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콘스탄체와 결혼한 모차르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차르트의 흔한 장조 소나타 중 하나로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곡이 얽힌 뒷이야기를 통해 다시 새롭게 발견되고, 특별함을 얻는다. 나는 곡에 담긴 이야기가 곡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작곡이 된 배경과 맥락을 살펴보는 것은 곡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음악 감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KV 403이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적인, 푸가 형식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음에도 바흐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1. CD 부클릿에는 클레멘스 로메인이 쓴 라이너 노트가 영어/불어/독어 세가지 언어로 실려 있는데, 그 세가지 버전에 모두 번역자 이름이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글쓴이는 원문을 그 세가지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쓴 것으로 보인다. (실려있지 않으니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글쓴이의 이름 'Romijn'으로 추측해 볼 때 네덜란드어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어 인용문은 David Shapero의 영어번역을 기준으로 Clémence Comte가 번역한 불어번역판을 참고하여 중역했다. [Back]
2008/07/14 15:14 2008/07/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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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비밀방문자 2008/07/15 12:19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Re: # 달크로즈 2008/07/17 16:37 Delete

      달리 말하자면 가산을 탕진한것이죠.. ㅠ_ㅠ 저도 한번에 이렇게 많이 사보긴 처음이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만 말씀하시는건가요? ^_^;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 포스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레이첼 포저(Rachel Podger, 바로크 바이올린)와 게리 쿠퍼(Gary Cooper, 포르테피아노)가 채널 클래식에서 내놓고 있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을 역시 가장 먼저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연주건 녹음이건 흠잡을 데 없는 시리즈에요. Vol.1 부터 5까지 나와있는데, 1집을 들어보시고 취향에 안맞는다고 생각되시면 더 안사셔도 될 것 같습니다. 1집에 담긴 KV378 같은 경우, 저는 참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곡이에요. 다만 Hybrid-SACD기 때문에 가격은 조금 비쌉니다.. (2만원대일거에요.)

      그리고 같은 원전연주라면 하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에서 내놓은 앤드류 맨지(Andrew Manze, 바로크 바이올린)와 리처드 이가(Richard Egarr, 포르테피아노)의 음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요건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어요. 몇년째 살까말까 고민하는 음반인데, 요즘 맨지와 특히 이가를 좋아하게 되어서.. 아무래도 사게되지 않을지.;;)

      제가 갖고 있는 다른 연주는 아르투르 그뤼미오 바이올린 & 클라라 하스킬 피아노의 필립스 반이에요.(이건 검색하면 금방 나올거에요. 워낙~ 유명해서. 4곡이 들어있고, 1958년도 녹음입니다.) 무척 유명한 녹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저 두 연주자를 참 좋아하기도 하는데... 오래된 녹음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포저&쿠퍼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더라구요. 하지만 모던악기 연주를 더 좋아하시고, 녹음질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신다면 충분히 추천할만한 음반이에요. 라이센스되어서 값도 싸구요. :)
      (하지만 정말 음질은 하늘과 땅 차이.... 서울과 부산... 아니 북극과 남극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2. Re: # 비밀방문자 2008/07/18 09:58 Delete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3. Re: # 달크로즈 2008/07/18 12:41 Delete

      ^_^
      그나저나 홈페이지는 계속 저렇게 놔두시는건가요~(가끔씩 바뀌긴 하더군요!)
      종종 들러주시니 저야 반갑습니다만, 답방(?)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워요.

      요번 더위는 정말 '조심'해야할 더위인 듯 싶어요. 특히 건강 조심하시길~

  2. # A. 2008/08/22 17:53 Delete Reply

    무달버의 블로그는 살아있다인가!

    1. Re: # 달크로즈 2008/09/25 05:33 Delete

      죽지 않았죠!

  3. # OpenID Logonaroon 2008/09/13 18:12 Delete Reply

    너 이 글 때문에 콘스탄체 얘길 했었구나 저번에 (..)

    1. Re: # 달크로즈 2008/09/25 05:33 Delete

      음.. 내가 언제 콘스탄체 이야길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너무 오래되었어..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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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상품은 돌고 돌아야 하는데 늘 구매하는 사람만 구매한다. 나는 사랑을 쟁취하는 자들에게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 없다. R의 미니홈피에 가면 남자 친구가 이벤트를 해 준 사진이 올라와 있다. (……) 사진은 분명 보라고 있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들은 올리지 않는다.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귀어도 그런 이벤트를 해 줄 것이다. 자기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R역시 다른 남자를 만나도 그런 이벤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R은 그런 이벤트를 늘 받아왔으므로 다른 남자를 선택할 때도 그런 이벤트를 해 줄만한 남자를 골라서 사귈 것이기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그렇다. 엇갈리는 사람은 엇갈리기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기만 하고, 아픈 사람은 아프기만 하다. 재화만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배급받지 못한 나는 내 사랑을 앗아간 것처럼 사랑하고 있는 자들을 시기한다.1

 - 고예나, 마이 짝퉁 라이프 중에서.

 "우린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연애 같은 건 안되는 건가 봐. 이번 판은 접고 다음 생에나 잘 해보자."
 그다지 오래 된 일은 아니지만 T와 농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다. 연애를 피한다고 해야하나, 포기한다고 해야하나. T는 희귀병을 앓게 된 이후로 이런 경향이 강해졌다. 그때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연유로 크게 상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는 연애를 한번 제대로 못해 본 친구들이 많다. 특히나 또래의 친구들. 사람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과연 그 말이 이런 면에서도 유효한 모양이다.

 4년쯤 되는 시간동안 두 사람 정도를 좋아했다. 그 언저리에 가까이 갔던 적은 있었지만 결실을 맺었던 적은 없었다. 잊을 만 할 때마다 한번씩 누군가에게 반하고, 버텨낼만 하다가 가끔씩 곁에 있어줄 누군가를 찾는 것은 단지 내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어서일까. 번번히 어긋난 마음을 확인하고 홀로 가슴 아파할 때면 내가 그토록 갈구하는 그 마음이, 그 대상이, 그 감정이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그저 곁에 두고 이런저런 재미없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누군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걸까, 그저 누군가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걸까. 글쎄, 설사 연애 경험이 있다 해도 쉽게 알 수 없는 문제일테니 연애 경험이 없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본들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어쩌면 바로 이게 내가 연애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난 죽을 때까지 연애를 못해 보고 말테고, 아마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이라고, 괜히 고집스러운 마음을 품어 본다.

 어떤 질문에도 답을 내지 못하고, 그 괴로움 앞에 그대로 남겨졌을 때. 나는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 가끔은 좋은 영화, 좋은 음악이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 나에게 가장 좋은 벗은 책이다. 가장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애를 여러번 겪어 본 일이 없으니 불가능한 일일텐데도, 가끔씩 책 속에 담긴 연애담, 그 감정들에 마치 겪어본 것처럼 공감을 하고는 했다. 연애란, 사랑이란, 한가지 원형의 수많은 반복이기 때문에 단 한번의 -그것도 완전치 않은- 연애 속에서도 모든 감정을 겪어 볼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예전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내 안에 잠자는 존재하지 않은 일의 기억이 잠깐 깨어났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가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더니 이번 수상작을 쓴 고예나는 나와 단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1년의 차이는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녀와 나는 거의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첫 부분부터 친숙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건 책 속의 글투가 (역시 나와 동세대인) 복숭아 님의 블로그 속 글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비슷해서일까. 연애와 삶을 대하는 태도마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기묘할 정도로 현실감을 느꼈다.

 최근 해외에서 건너온 칙릿의 영향 대문인지 한국 소설시장에 30대 여성의 삶과 사랑을 '쿨하게' 다룬 책들이 제각각 '수상작'의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 나왔다. '쿨하게 한걸음', '스타일',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등등. 작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던 '걸프렌즈'도. 다른 책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걸프렌즈'에는 실망이 컸다. 정말 쉽고 빠르게 읽혔지만 공감을 하기에는 힘들었다. 그건 내가 30대 여성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쿨하지도 시크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비록 김애란처럼 탄탄하지는 않아도, 김주희처럼 환상적이지는 않아도, 20대의 삶과 연애를 너무 가볍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게 담담한 듯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왜 지금 내 감정상태가 '슬픔'인지 모르겠다. R은 내게 말했다. 미니 홈피의 감정을 바꾸면 진짜 기분도 환기된다고. 그 말이 맞다면 나는 오늘 내 미니 홈피의 감정을 바꿔야겠다. '그냥'보다는 '파이팅'이 좋겠다. (……)

  미니 홈피의 감정에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의탁하는 R이나 가짜 문자에 매일 행복해하던 나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R의 말대로 우린 가짜로 인해 진짜를 위안받고 사는 것일까.2

 ‘세상이 만든 진실이 미워지면 너만의 가짜를 만들어라. 가짜로 인해 행복해 하는 나를 보고 부러워해줄 누군가가, 나의 가짜 감정에 속아줄 누군가가 우리는 필요하다.’3 주인공 입을 빌린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가짜가 진짜가 되는 시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로 둘러싸인 세상을 살고 있다. 당장에 지금 이 순간 인터넷에 접속해서 보고 있는 것들도 실체가 없는 가상의 것.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넘쳐난다. 가짜가 없으면 위안받지 못하는 삶이라.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조금 슬퍼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의 유효기간이 짧아지는 시대에 ‘짝퉁’은 오히려 마음을 치유하는 여백일 수도 있다”4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ps. 수상 후 책 나오는게 생각보다 늦어져서 wzd.com 내 페이지에서 기사 검색 위젯을 활용해 '고예나' 키워드로 기사 검색을 해뒀는데, 이게 의외로 괜찮았다. 계속 결과가 갱신 되니까, 처음 수상 소식부터 책 출간 뒤 인터뷰와 리뷰 기사까지 찾아보기 쉽다. 그런데 인터뷰는 꽤 많이 헀는데 신인작가의 책 홍보용 인터뷰라 그런지 작가 말은 딱 한마디 정도 인용되는 수준..;


마이 짝퉁 라이프 - 8점
고예나 지음/민음사
  1. 고예나, '마이 짝퉁 라이프', 민음사, 2008. p.102 [Back]
  2. 위의 책, p.222 [Back]
  3. 위의 책, p.244-245 [Back]
  4. 동아일보, 2008년 6월 28일자 [문학예술]“짝퉁은 마음을 치유하는 여백”…‘마이 짝퉁 라이프’ 에서. [Back]
2008/07/03 19:00 2008/07/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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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8/07/03 19:30 Delete

    가짜로 인해 진짜를 위안받는 삶 - 고예나의 마이 짝퉁 라이프. 내 취향에 딱 맞지는 않았만- 그래도 좋았다. 그나저나 84년생 작가라니. 내가 나이를 먹은건가, 작가가 젊은 나이에 등단을 한건가?;

  2. 고예나 - &lt;마이 짝퉁 라이프&gt;

    Tracked from Fly, Hendrix, Fly 2008/10/22 00:32 Delete

    마이 짝퉁 라이프 - 고예나 지음/민음사 처음 책을 잡았을 때는 "뭔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시대가 밀어넣는 시궁창 같은 상황에서 살아가는 같은 세대가 궁금했다. 그런데 다 읽고나니, 허무하고, 공허하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감성을 얻은 것도 아니다. 정말 잘 모르겠다. 뭐지? 20대의 허무함? 짝퉁을 진짜처럼 입는 R에 대한 생각? 칙릿을 안 읽어본 것도 아니고, 차라리 <The Devil wears Prada> 같은 경우에는..

  1. # lckbless 2008/07/03 22:11 Delete Reply

    나야 작가들이 대개 몇살에 등단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모르니까 할 말이 없다마는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네가, 아니 우리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
    운동선수들은 지금쯤의 우리의 나이면 이제 한창 왕성하게 활동을 하며 자기 이름을 날릴 때이고 프로 바둑기사로 말할거 같으면 잘나가는 사람일 경우 국제대회 우승정도는 최소 한번은 해봤을 나이고... 아인슈타인은 이미 상대성 이론의 이론적인 기초정도는 생각해냈던 나이이기도 하고 말이지...
    나이 24살이라면 어느 분야에서건 그 분야에서 정말 앞서가는 사람이라면 이미 어느정도의 명성을 누리며 큰 활약을 하고 있을 나이란 말이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나는 뭔가 다른사람과는 틀릴거야. 나만의 특별한 무엇인가를 갖고 있을거야. 지금은 나이가 어린 이유로 그다지 드러나지 못했지만.' 이라는 전혀 근거없는 자존심이 조금씩 조금씩 현실을 알아가며 '나 또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저 세상의 흔해터진 사람들중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여가는 것 같아.
    이런 걸 보고 '나이를 먹어간다'고 하는 거겠지...

    1. Re: # 달크로즈 2008/07/04 01:35 Delete

      그렇소!! 그렇소!! 우리는 이미 어리지 않고, 한살씩 늙어가고 있는 것이오!

      흑. ㅠ_ㅠ

  2. # A. 2008/07/06 01:23 Delete Reply

    어디 번데기앞에서 주름을..

    1. Re: # 달크로즈 2008/07/06 11:48 Delete

      난 주름이 있다면 펴고 싶은 사람인데.. ^_^;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왜 이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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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기행

Posted 2008/02/29 01:45, Filed under: 감상/음악 이야기
산조기행(散調紀行)

산조기행(散調紀行)

 '흩어진 가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산조(散調)는 국악 중 민속악에 속하는 한 장르로, 기악독주곡이다. 국악사에 처음 등장한 것이 19세기 말이니, 현재 널리 연주되는 국악양식 가운데에서는 가장 최근 만들어진 편에 속하는 셈이다. 보통은 느린장단으로 시작해 빠른장단으로 끝을 맺는데, 가락- 선율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즉흥성을 지니고 있어서 연주자의 재량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어가며 연주한다. 그러니까 같은 곡을 연주한다고 해도 연주자에 따라 서로 완벽하게 똑같지 않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누구의 산조라고 부르지 않고 누구누구'류' 산조 라고 부르는 것이 그 까닭이란다. 뭐,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되는 지금(contemporary)의 음악...이라는 말로 수식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편하게 보면 요즘의 국악음악회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독주곡 중 하나다.

 컴퓨터를 켜고 뭔가 작업을 할 때에는 조용할 때가 가장 집중이 잘 되지만, 오랜 시간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쥐죽은 듯 조용한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음악을 틀곤 하는데 음악에 따라 작업능률이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한다. 보통 가사가 있는 음악은 방해가 되기 때문에 조용한 클래식을 틀어놓는데, 이번 새 스킨을 위한 작업을 할 때 배경음악으로 고른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새로 구입한 산조 음반. 결과부터 말하자면 '산조의 발견'이라고 할만큼 좋았다. 구문 강조된 XHTML 문서로 가득 찬 모니터 스크린 속을 들여다보며 '평생 프로그램 한번 짤 일 없을 나인데 왜 이런 팔자에도 없는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찾아올 때 마다 산조를 들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산조기행은 국악FM이 기획하고 유니버설 레코드가 제작하는 '소리숲' 레이블을 달고 나온 음반으로- 이름대로 산조를 모아 담은 음반이다. 단소,거문고,피리,아쟁,가야금,해금,대금 각 독주악기의 산조에 더해서 합주까지 실려있는 일종의 '산조 종합선물세트'랄까. 연주도 괜찮고, 녹음도 훌륭하다. 심지어 각 산조를 너무 길게 느낄 현대인들을 배려해서 일부러 15분 남짓한 짧은 산조로 담았다고 한다. 산조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명인'들의 연주보다 생동감 있는 '지금'의 연주를 좋아한다면, 한번 찾아 들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음반이다. 물론, 넘칠듯한 기대를 가지고 듣는다면 열에 아홉은 실망을 하고 말거다. 하지만 어깨에 힘을 좀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듣는다면 산조의 매력이 은근히 전해져올런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음반내지에는 음악평론가 윤중강씨의 해설이 담겨있는데, 글이 자세하거나 깊이가 있는건 전혀(!) 아니지만 '현대인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려 애쓴 흔적이 보여 재미있다. 예를 들어 시나위를 설명하면서 2005년 출간된 소설 '미실'을 인용한다던지 하는 시도는 '부클릿 해설'이라는 틀 내에서 본다면 상당히 독창적이라고 할 만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에게 산조를 권한다'라는 부분인데.... (거기에 프라모델을 조립하면서 듣는 것도 좋다니, 이거 타겟팅이 좀.)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어디선가 이런 괴상한 국악해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서울 남산 국악당에 가야금 연주 들으러 갔을 때, 개관 기념 축제 프로그램 합본에도 이런 비슷한 느낌의 해설이 달려있었던 것 같다. 국악과 명품 브랜드를 연관시키는, 해설이나 소개라기보단 프로모션에 가까웠던 코멘트들. 음악회에 가면 대부분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편인데 이날은 프로그램이 꽤 이쁘게 나왔는데도 사지않고 그냥 왔던 기억이 난다. 그 느끼한 코멘트들은 누구의 작품이었을까.


2008/02/29 01:45 2008/02/2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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