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혼자 쓰는 편지

Posted 2010/07/12 00:10, Filed under: 기록

바로 앞 글이 ‘편지’에 대한 이야기이니, 편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시작할까 한다. 며칠 전 편지를 한 통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적었다.

「‘내 말이 잘 전해질 수 있을까?’라는 불안은 서신 교환에는 늘 따라 붙는 것이지만, 받는 사람의 상황을 통제 할 수 없다면 보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걱정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지요. 오히려 그 불안이 편지만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에 다시 접속하니 멀리 떠나있는 동안 비워두었던 집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다. 밀린 청소를 하듯 스팸 트랙백을 지우고, 블로그 툴(텍스트큐브)의 버전도 업데이트하고 난 뒤에, 글을 하나 올리려고 이렇게 자리를 잡고 보니 문득 블로그 글도 편지와 별 다를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와는 달리 블로그 글은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블로그 글 또한 공개된 곳에 쓰는 글이기에 읽는 사람의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가 없다. 패스워드를 입력해서 로그인 해야만 볼 수 있는 비공개된 공간이 아닌 공개된 곳에 쓰는 글쓰기라면.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게 마련이지만 잘 전해질런지 읽기는 할런지 글쓴이로서는 모를 일이니까.

‘써야만 하는 편지’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쓰고 싶은 편지’를 쓸 때면, 보통 첫머리에서는 조금 신중하게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흥에 겨워서 써나가게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한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나면 주욱 밀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쓰는 동안은 약간 들뜬 마음에 신나게 글을 써내려 가지만-물론 그때 그때 읽을 사람의 반응이 어떨지 생각해보기는 한다-, 다 쓰고 난 뒤에 찬찬히 읽어 나가다 보면 좀 부끄러워지곤 한다. 아니, 어쩔 땐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황급히 봉투에 넣어 봉하고 부친 뒤, 그제서야 받는 사람이 바랐을 소식이 아닌 쓸데 없는 말만 잔뜩 써서 보낸 것이 아닌가, 내가 하려는 말만 쏟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슬그머니 피어난다. 물론, 그때는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일이다. 차라리 전달되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결국 자기 흥에 겨워서 써내려 간다는 점에서, 편지는 마치 혼자서 쓰는 짝사랑의 연애소설과 비슷하다. 내가 그동안 여행지에서 또는 동네에서 써왔던 많은 편지들 또한 어떤 면에서는 다 연애편지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구애의 말을 단 한 글자도 담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가 ‘해 뜨기 전’에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명한 어떤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하는 모든 일은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블로그 글 또한 편지와 마찬가지로 모두 연애편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블로그를 내버려둔 동안, 다른 새로운 공간들을 옮겨 다니며 짧은 기록들을 남겨 왔다. 미투데이도 모자라 이젠 트위터까지 쓰고 있으며, 이젠 텀블러에 남겨진 글들도 제법 된다. 그렇게 쌓인 짧고 파편화된 기록들은,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머물다 지나간 자리마다 붙여놓은 포스트잇과 같은 것들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흔적을 남겨 놓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자기연민에 빠지게 되지만, 그래도 한가지 고맙고 위안이 되는 것은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 종이 쪽지를 주워들고 말을 걸어준, 그 아래에 댓글을 달아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졌다면 그건 모두 그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져준 말 덕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정작 누가 못쓰게 말린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이 미투데이나 트위터를 기웃거리면서 긴 글을 쓰지 않은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욕구가 내 안에 쌓여 어떻게든 다시 써봐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것도 벌써 몇 주전의 일이었다. “이제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운짱에게 (트위터로) 축하한다는 말까지 미리 들었던 것 같다. 정작 나는 아직 아무 것도 쓰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결국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많은’ 이 시절 덕분에 옛집에 돌아와 글을 남긴다.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도 열심히 드나들면서 서로 댓글을 주고 받던 일도 이제는 아득한 옛 일처럼 느껴진다. 이 자기 흥에 겨워 쓰는 연애 편지를 이제와서 다시 한통한통 써서 보낸다 한들, 누가 어떻게 읽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내 블로그는 댓글이 잘 달리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어떨까. 끝내 답장이 오지 않는다 해도 쓰는 동안만큼은 두근거리는 그런 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해볼까 한다. 간만에 블로그에 들어와서 쓰는 글 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하고 감상적이지만, 어쨌든.

(ps. 텍스트큐브 1.8이 예전 버전의 스킨과 호환에 문제가 좀 있는 모양이다. 텍스트큐브 블로그 업데이트를 하고 난 이후, 카테고리가 잘 표시되지 않는다거나, 댓글 창이 기본으로 보이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래도 스킨을 대대적으로 손 봐야 할 것 같은데, 그 전까지 임시로 기본 스킨으로 바꾸는 방법과 문제점을 그냥 안고가는 방법 중에 고민 중이다. 어쨌든 최대한 빨리 손을 봐야겠다.)

2010/07/12 00:10 2010/07/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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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yuna 2010/07/12 12:27 Delete Reply

    정말. 오랜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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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편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편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온 편지가 도착했다. R이 보낸 카드다. 지난해 말 내가 보냈던 크리스마스 카드에 대한 답장이었다. 봉투를 봉한 스티커에는 다니고 있는 대학의 로고가 박혀있었고, 카드는 SF의 스카이라인을 담고 있는 디자인이었다. 예전 아일랜드에 머물던 R을 영국에서 만났을 때도, 아일랜드 풍광을 담은 엽서와 함께 아일랜드 양 떼 그림이 그려진 천 재질의 식탁 매트(place mat)를 선물로 받았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도 친구인 내게 SF의 한조각이라도 보여줄만한 물건을 일부러 골라 보냈음이 분명했다. “San Francisco의 빛나는 햇살과 바람도 함께 전해지길 바랄께.” 여행을 간 것이 아님에도, 그녀는 그곳에서 여전히 여행자의 마음으로 머무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약 1년 전―2008년 말에 한국을 떠났다. 그의 사정과 내 사정상 최소한 몇 년 안으로는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을 감안해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이동성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삶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누군가는 “평평해졌다”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실제로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아직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전화를 걸지 않더라도 당장 PC를 켜면 메신저가 있고, 웹브라우저를 띄우면 메일과 싸이월드/페이스북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만― 온라인-사이버스페이스-에서 내뱉은 우리의 말은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 만날 수 있을 뿐, ‘경계’를 넘어 상대방이 있는 곳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도, 닿지는 못하는 것처럼. 적어도 지금 우리가 위치한 삶의 단계에서는 그러하다. 그리고 시간은 갈수록 흐르는 속도를 빨리 하겠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넓지 않은 공간에 빼곡히 담긴 글자들 사이에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공부하는 이의 애환이랄까, 어떤 감상이 숨길 수 없이 전달되어 온다. 요즘 10년지기 친구들이 많이 생각나는데 이곳 학교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서 그런 것 같다거나, 돌아가면 반겨줄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거나. 편지를 읽는 시선이 오랜만의 안부인사에서 흔히 접할 만한 말들 위로 물흐르듯 지나가다, “언젠가는 내가 그곳을, 그들을 버리고 떠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라는 문장에 이르러서는 잠시 멈춘다.

  물론 나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잘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타향 생활의 외로움이라던가 고난에 지지 않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아마 그는 그런 감상에 휘둘릴 틈도 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어느 때― 지구 반대편을 떠올릴 때가 온다면, 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보잘 것 없는 위안이나마 줄 수 있기를. 그로 인해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서로의 삶을 잘 이어나가기를. 서로 떨어져 있는 점과 점 사이를 이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바로 그것이, 나 또한 이 인터넷 시대에 내 손으로 편지를 쓰고 직접 우표를 붙여 먼 곳으로 보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경계를 넘지 못하는 내가 경계 너머의 그대에게.

2010/01/26 03:10 2010/01/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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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10/01/26 03:28 Delete

    “경계”를 뛰어넘는 법.

  1. # 비밀방문자 2010/02/01 00:23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Re: # 달크로즈 2010/02/22 12:44 Delete

      답글이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매번 다시 블로그에 신경을 써야지.. 하고서는 못쓰고 있어요. 대신 이웃분들 글은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소식, 게임 이야기 종종 가서 읽고 있어요. (저도 매번 생각만 하다가 댓글을 못달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저는 오히려 트위터나 미투데이가 아니었으면 블로그에 좀 더 글을 많이 썼을텐데.. 라며 아쉬워 하고 있는 편입니다. 편지, 좋아하는데 써서 보낼 기회는 자주 오지 않네요. 이메일로 보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내용이 길어지기 마련이고, '남 이야기 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안부인사 고맙습니다. 반가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기 조심하시고, 종종 뵙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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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목요일이었다. 나는 학교를 향하는 길, 300번 버스 맨뒷자리에 앉아서 전공 리딩 패키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 날은 전공 과목의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고, 나는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도 PC 앞에 앉아 발표와 함께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 작성에 매달렸었다. 보고서를 쓰느라 정작 발표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고, 버스 안에 앉아서라도 살펴보던 참이었다.

 ‘영어로 발표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슬라이드 앞에서 어떤 말을 할지 이렇게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텐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읽던 교재에서 눈을 떼어 무심코 정면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 때였다. 한 여성이 내 시야에 들어왔고, 내 주변의 시간은 갑자기 멈춘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리는 문 바로 옆 자리에서 파란색 코트를 입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내리는 문은 닫혔고 버스는 다시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창 밖으로 비친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서야, 내 주변의 시간은 다시 원래 속도로 돌아왔다. 실제로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뒷모습과 옆모습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절의 N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N은 아니었다. N일리가 없다고, 내 머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N이 이런 곳에 있을 가능성이 희박할 뿐더러, 그녀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N의 마지막 모습과는 사뭇달랐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그녀가 놀랄만큼 닮았던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절의 N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본 그녀의 모습은 결코 현재의 N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N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된 이후에도 우연히 한번 N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라는 노래 가사처럼, 내 모습만 돌아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마 지금의 N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절의 모습도 아니고,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과도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단지 겉모습 뿐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오히려 ‘진짜 N을 마주쳤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N의 모습은 어떤 시간 속에서 멈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는 내 모습 또한 멈춰 있을 것이라고.

 그로부터 만 하루가 더 지난 금요일 저녁, 회의를 마친 뒤 자연스레 이어진 술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헤어져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뮤지컬 맘마미아의 노래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맘마미아’의 뮤지컬 넘버 중에서 최고의 곡이 ‘The Winner Takes it All(이긴 사람만이)’나 ‘Thank You For The Music’이란 데엔 이견이 없지만, 누군가 내게 추천하고픈 한 곡을 꼽아달라고 한다면 아마 ‘Slipping Through My Fingers(내 손에서 빠져 나갔어)’나 ‘Knowing Me, Knowing You(나는 나, 너는 너)’를 선택할 것이다. 공연장에서 매일 맘마미아를 보고 듣던 때, 나는 샘을 연기하는 성기윤의 목소리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샘이 부르는 맘마미아의 노래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은 단연코 샘의 유일한 솔로곡, ‘나는 나, 너는 너’였다.

 맘마미아 한국 캐스팅 음반에는, 이 노래의 한국어 버전이 내가 한창 좋아했던 시절의 바로 그 ‘샘’이, 내가 즐겨 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부른 버전으로 실려있다. 하지만 녹음으로 듣는 그 목소리는 어두운 오페라하우스 한 구석에서 앉아(혹은 서서) 듣던 그 때의 감흥을 되살리기에는 어쩐지 뭔가 살짝 부족하다.

 “나는 나, 너는 너. 어쩔 수가 없잖아. 나는 나 너는 너,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이별. 헤어진다는 건 쉽진 않지만 난 그랬지. 나는 나, 너는 너. 그게 최선인 걸.”

 이 노래의 가사는 최선을 다했고, 어쩔 수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는 면에서 ‘난 후회하지 않아Je ne regrette rien’식 연애 회고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예전에는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으므로,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뜻 그렇게 말하기 망설여진다. 그 당시에 나는 나름의 논리와 그에 따른 결론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지만,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었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 결국 그때 마주친 몇몇 사소한 변수가 내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후회없는 반성은 무책임하다.

 관계에 있어서 괴로움을 겪을 때마다, 나는 예전의 나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노력했고, 좀 더 성숙하고 인정받는 관계를 맺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과연 그때의 나보다 나은 사람인가. 토요일 저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걸으며 최근 내 곁을 오갔던 대화들을 곱씹다가 문득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와 어울릴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본 내 모습의 차이에 있어서는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처럼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자책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많을지 모르겠지만, 후회할 수 있을 때 충분히 해두어야 한다. ‘후회’하는 순간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게 되는 그런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지나치게 후회하며 과거의 불행에 얽매이지 않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후회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후회하기 좋은 순간은 늘, 뒤늦게 찾아온다. 때늦은 후회는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앞으로의 선택을 향한 것이다. 적어도 관계의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 하지만, 그 변하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나는 과거 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나는 나 너는 너, 어쩔 수가 없지 않냐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말하는 샘에게 소피는 ‘난 아저씨와는 다르다’고 반박하고는 샘을 홀로 남긴 채 뒤돌아 사라진다. 그 뒤에 다시 이어지는 샘의 후렴구는 자기 변명의 넋두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후회의 표현에 가깝지 않을까. 바로 그 덕분에 샘은 다음 번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하고, 마지막에는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음껏 후회할 때이다. 그때 너를 잡지 못한 것도, 첫 만남의 알듯말듯한 시선 교환 속에서 당신에게 먼저 손내밀고 말 걸지 못한 것도, 발표를 위해 강의실 앞에 나와 그대들 앞에서 버벅이는 영어로 혼잣말을 해야 했던 것도.

2009/11/29 16:35 2009/11/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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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뒷편 서학당길, 씨스퀘어 빌딩 앞뜰 공간

태평로 뒷편 서학당길, 씨스퀘어 빌딩 앞뜰 공간.

늦은 오후

빌딩들 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었다.

태평로 뒷편 서학당길, 씨스퀘어 빌딩 앞뜰 공간- 카페 아모카

스폰지하우스와 카페 아모카는 씨스퀘어 빌딩에 있다. 조선일보 건물만 아니라면 더 좋았을텐데.

전시 소도록, 리플렛, 티켓.

전시도 보고.

애니 레보비츠: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 티켓과 프로그램

영화도 보고.

 몇 달간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던 복학 첫 학기도 월요일 시험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방학이 찾아온 날, 나들이 하는 기분으로 서울을 향했다. 우선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 전’을 보았다. 사실 르누아르는 선호하는 작가가 아니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최근에 연이은 대형 전시-반 고흐, 퐁피두센터, 클림트, 르누아르-의 일환이려니 하는 마음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갔었다. 그래서였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전시가 좋았다. 입장료가 여전히 좀 비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평일 낮에 간 덕분인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쾌적하게 볼 수 있었다. (끔찍했던 반 고흐 전과 그에 못지 않았던 퐁피두 센터 전, 그리고 결국 포기한 클림트 전 인파에 비교하면 천국이었다.)
 보면서 ‘르누아르는 역시 색이구나, 이 빛깔이 르누아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대형작품이 오지 않아도, 특별히 유명한 작품이 오지 않더라도 그만이 낼 수 있는 빛깔을 띤 작품들만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따로 인물이며 배경이며 할 것 없이 그림 전체에서 뿜어져나오는 그 따스한 빛깔 자체가 르누아르의 이상, 낙천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피아노 치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 두 점 있었는데(내 짐작이지만 다작을 한 편인 르누아르는 피아노 치는 여성을 그린 그림도 많이 남겼을 것 같다.) 그림 속의 피아노를 보면 르누아르가 살았던 시기-르누아르는 1841년생으로 내 아버지보다 딱 100년 전에 태어나 내 할머니가 태어난 해인 1919년에 세상을 떠났다-에는 이미 피아노의 기술적 발전은 거의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업라이트 피아노 하나, 그랜드 피아노 하나.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허허.

 미술관을 나와서는, 천천히 덕수궁길을 걸어 카페 소반에 들어가 비빔밥을 먹었다. 자주 오진 못하지만 좋아하는 곳. 그리고는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에서 다큐멘터리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본 삶’을 보았다. 애니 레보비츠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이, 그저 유명한 사진작가려니 하는 생각만 가지고 상영관에 들어섰는데 필름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마치 스쳐지나가듯이) 수없이 등장하는 유명인사, 셀러브리티들. 그리고 수전 손택. 존 레논이 죽기 5시간 전에 찍었다는 사진보다, 수전 손택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수전 손택과 특별한 사이였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나서는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 ‘아모카’의 바깥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 펜과 노트를 꺼내 들고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날 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다시 떠올리며 글을 끄적였다. 좀 억지스러운 생각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애니 레보비츠의 모습에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겹쳐보였다. 시대도 배경도 활동 영역도, 삶의 궤적도 전혀 달랐던 두 사람이지만, 리얼리즘이나 사회참여적인 화풍을 거부하고 이상적인 모습-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끈질기게 그렸던 르누아르와 (수전 손택 때문에 잠깐 르 포르타주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주로 남다른 아우라를 이미 갖고 있는 유명인들을 사진으로 담아오다가, 패션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강렬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인위적인 연출사진을 찍어온 애니 레보비츠가 어쩐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을 아끼고, 가족들의 모습을 즐겨 담아왔다는 것까지도.

테이블 위의 햇살.

하지夏至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햇볕이 강렬했다.

테라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쪽 자리에도 앉았다.

The Oxford Book of English Short Stories

The Oxford Book of English Short Stories. Edited by A. S. Byatt. (2009, Reissue Edition.)

The Oxford Book of English Short Stories

Saki의 단편도 실려있다. 체스터튼, 울프, D.H. 로렌스도. 총 3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하루 전에 산 것이지만) 옥스포드에서 나온 잉글랜드 단편 소설 모음집을 샀다. 소유Possession(1990)로 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작가 바이어트가 편찬한 것으로, ‘스코틀랜드’도 ‘웨일즈’도 아닌 ‘잉글랜드’ 단편들만 모았단다. 원래 다른 책을 보러 외국책 서가를 뒤지다 우연히 눈에 띄었는데, 표지와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들춰보았다가 바이어트의 서문을 읽고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잉글랜드스러움Englishness’에 대해서 고민 끝에 작품들을 골라냈는데, 잉글랜드 자체를 소재로 하거나 영국 스타일에 대한 선입견이 담긴 작품들은 조심스레 걸러냈다고. 분량도 제각각, 장르도 다르지만 모두 읽으면서 목덜미를 짜릿하게 할만한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작품들을 골랐다는 말. 거기에 사키도 들어있다니. (이 책에 실린 사키의 단편, ‘평화의 장난감’은 사은님이 번역을 하셨다.)

 카페에 앉아서 간만에 찾아온 여유로움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순간, 뭔가 허전함을 깨달았다. 르누아르 전시를 보는 내내 음악을 틀어두었던 아이팟 셔플의 행방이 묘연한 것. 분명 돌아다니다 어디선가 흘린 것이 틀림없었다. 카메라에 신경쓰느라 아이팟을 신경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행적을 돌이켜 볼때 식사를 한 카페 소반에 두고 나왔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곳에서 식사를 했을 때는 오후 3시가 넘었던 시각이라 한가했고, 스탭들도 한쪽(예약단체석으로 주로 쓰이는 대청마루)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어서 그 직원들이 퇴근한게 아니라면 날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았다. 어디 도망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했지만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소반에 도착했을 무렵은 저녁 시간대로 가게가 한창 붐비는 때였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스탭들은 날 알아보았고. 직원은 “금방 찾으러 오실줄 알았는데…” 라는 말과 함께 미소 띤 얼굴로 셔플을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참, 칠칠치 못하죠? 그곳에서 다시 신문로로 나왔을 때는 이미 7시가 넘은 시각. 길고 긴 여름의 해는 천천히 서쪽으로 기울면서도 여전히 빌딩 숲 사이로 하늘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2009/06/25 02:31 2009/06/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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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9/06/25 03:29 Delete

    어느 여름 날에.

  1. # yuna 2009/06/27 16:01 Delete Reply

    (카페의 여유로움이 날아가긴 했지만) 찾아서 다행!
    저도 그 책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1. Re: # 달크로즈 2009/06/27 22:59 Delete

      네, 찾아서 다행이죠!! 휴...
      사실 저 책은 일단 뒤로 미뤄놓고, 지금은 Northern Lights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

  2. # 피렌체 2009/06/27 23:09 Delete Reply

    우엇, 전 월요일에 보러갈려고 하다가 휴관인걸 알고는 까페소반에서 비빔밥을 먹었어요. ㅋㄷㅋㄷ 결국 목요일에 보러갔다왔답니다.

    1. Re: # 달크로즈 2009/06/27 23:17 Delete

      월요일은 아무래도 위험하죠~!!
      조만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보러 정동에 한번 더 갈 듯 해요. :)

  3. # 나우시카 2009/07/29 11:47 Delete Reply

    아.. 이 블로그 너무 어렵다~ 하하 아무튼 반가워요. 나우시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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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Posted 2009/06/20 00:42, Filed under: 감상/음악 이야기
헤레베헤의 포레 레퀴엠

헤레베헤의 포레 레퀴엠. Harmonia Mundi France. HMC901771

 헤레베헤1의 포레 레퀴엠 음반을 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를 시청광장에서 지켜본 뒤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지난 3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살까 말까 고민했었던 음반인데, 결국 이번에 샀다. 아는 이의 죽음이 늘어갈 수록 레퀴엠 음반도 쌓여간다. 나의 첫 헤레베헤 음반. 그리고 내가 산 ‘레퀴엠’ 음반도 이것으로 3종 4개가 된다.

 헤레베헤가 이끄는 포레의 레퀴엠은 내가 갖고 있는 다른 어떤 레퀴엠보다도 아름답다.(아직 레퀴엠을 실연으로 들어볼 기회는 없었다.) 웅장하다고는 할 수 있어도 경건함과는 거리가 있는 베르디의 ‘콘서트용’ 레퀴엠 미사나, 경건하다 못해 살짝 우울하기까지 한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미완성 레퀴엠에 비해 포레의 레퀴엠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듯 하다. 거기에 군더더기와 기름기를 쫙 빼버린 헤레베헤의 스타일은 구조적 아름다움에 더해 어떤 숭고함까지 느껴지도록 만든다.

In a celebrated statement about his Requiem, Fauré admitted that he saw death ‘as a happy deliverance, an aspiration towards happiness in the hereafter, rather than as a painful transition… Perhaps I also instinctively tried to get away from the well-trodden paths, after accompanying funeral services on the organ for so long! I’ve had them up to here. I wanted to do something different.’ He added, in a letter to Maurice Emmanuel, that ‘my Requiem was composed for nothing… for pleasure, if I may venture to say so!’

- from linernote by Jean-Michel Nectoux

Translation: charles Johnston

 포레의 레퀴엠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죽음에 대한 이런 포레의 생각 때문 아닐지.

 들으면서 한곡 한곡 모두가 참 좋다고 느꼈다. 어두운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아침을 여는 곡으로 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그러기엔 ‘죽은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로 시작되는 가사가 너무 무섭기는 하다. 아무렴 어떠랴 싶기도 하지만… –_-) 최근에 들은 성악곡들은 대체로 독주곡이었기에 오랜만에 듣는 제대로 된 합창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헤레베헤가 녹음한 포레의 레퀴엠은 두 종류가 있다. 헤레베헤는 1892년 실제 장례식에서 포레 본인의 지휘로 초연된 오리지날 실내악 버전인 ‘1892 버전(Original version, Madeleine version 이라고도 불린다)’을 1980년대에 녹음했고, 포레가 나중에 콘서트용으로 개작한 ‘1901 버전(1901 version for full orchestra)’을 13년 뒤인 2002년에 새롭게 녹음했다.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잘은 모르지만 라이너 노트에 따르면, 두 버전은 곡의 편성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892년의 오리지널 버전 대신 1901 버전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쪽 녹음이 좀 더 최근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다름아닌 앨범 커버의 영향이 컸다. 새카만 바탕에, 가장 아래에는 독특한 모습으로 누운 여성의 조각이 있는 표지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버전의 음반 표지도 인상적이긴 하다. ‘레퀴엠’에 걸맞게 좀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음반을 구입 한 후 확인해보았더니 표지 사진에 담긴 것은 ‘성 체칠리아’라는 작품이었다. 성녀 체칠리아(또는 세실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성인이자 순교자다. 위키피디어를 항목에서 그녀에 대한 일화를 살펴본 뒤에야 왜 이 조각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체칠리아에게는 뜨거운 열기가 나는 목욕탕에 갇혀 쪄 죽는 처형법이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체칠리아는 목욕탕에 들어가서 24시간이나 갇혀지냈다. 그녀가 죽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병사들이 문을 열어보았는데 체칠리아는 죽기는커녕 멀쩡히 살아있었다. 이에 당황한 알마치우스는 이번에는 이전의 순교자들과 똑같이 참수형에 처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형리가 3번이나 그녀의 목을 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모진 고통 속에서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그녀는 오른쪽 손가락 3개와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자기는 삼위일체인 하느님을 믿고 그를 위해 죽는다는 것을 표시하여 자신의 굳센 믿음을 알렸으며, 교황에게 자신의 집을 교회로 개조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 말을 남긴 후 3일이 지나 4일째 되는 날, 체칠리아는 순교하였다.

나중에 사람들이 그녀의 유해를 매장하였는데, 821년 교황 파스칼 1세가 그 무덤을 다시 열어 보니, 시신이 조금도 썩지 않고 살아 생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유명한 손가락 형태도 그대로였다고 한다. 이에 감복한 교황은 정중히 예식을 갖추어 그녀를 성녀로 인정하고 그녀에게 봉헌된 성 체칠리아 대성당의 지하 묘소에 안치하였다.

- 위키백과, ‘체칠리아’ 항목에서

St Cecilia's Martyrdom

산타 체칠리아 성당 내 지하 성 체칠리아 묘소에 있는 마데르노의 조각상.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어 프랑스어( http://fr.wikipedia.org/wiki/Fichier:Tombeau_sainte_cécile.jpg )

성 체칠리아 조각상 자세히 본 모습

자세히 본 모습. 사진 출처는 위키 피디어 공용( http://en.wikipedia.org/wiki/File:St_Cecilia%27s_Martyrdom.jpg )

  표지 속 조각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바로크 조각가라는 스테파노 마데르노Stefano Maderno의 조각 작품으로, 로마에 있는 산타 체칠리아 성당 안 그녀의 묘소에 있는 것이다. 순교 전승이 대부분 그렇듯 조금 으스스하기도 한데, 마데르노의 조각은 그녀의 순교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자세하게 찍은 사진을 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목에 그어진 금(도끼자국?), 그리고 손가락의 모습2이 순교 설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알고 보니 좀 더 무서워졌다.;
 가톨릭에서 성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 성인으로서, 흔히 오르간이나 류트,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3 이 때문인지 브리튼, 스카를라티, 구노, 퍼셀 등 유명한 작곡가들이 그녀와 관련된 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성 체칠리아와 포레의 레퀴엠이 연관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음악의 수호 성인’이어서 선택이 되었거나, 단순히 시각적 효과 때문에 선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녹음에서 헤레베헤는 라틴어의 프랑스식 발음을 채택했고, 포레의 지침에 따라 오르간을 대신해 하모니움을 사용하고 있다. 헤레베헤의 포레 레퀴엠은 전곡 모두가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는 피에 예수Pie Jesu 부터 아뉴스 데이Agnus Dei를 지나 리베라 메Libera me에 이르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하프 소리가 돋보이는 마지막 곡 In paradisum도 빼면 아쉽다. 한곡만 꼽으라면 아뉴스 데이를 꼽겠다.

  1. Philippe Herreweghe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겐트 출신의 지휘자다. 그의 이름은 예전(한국에 그가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에르베그’라고 표기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필리프 헤레베헤’ 가 공식적인 표기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 하다. 겐트가 네덜란드어권인 플랑드르(플랑드르Flandre는 불어식 표기이고 네덜란드어로는 블람스Vlaams)지방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르는게 맞을 것 같으나 네덜란드어 한글표기법을 잘 모르는 관계로 ‘헤레베헤’가 맞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얼마전 KBS 2TV 클래식 오디세이에서 헤레베헤와 인연이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가 출연했는데, 그녀는 그를 ‘헤레베게’라고 불렀다. 독일식 발음인지? [Back]
  2. 위키백과 한글 항목에는 ‘오른손 3개와 왼손 엄지’라고 나와있는데, 영어 항목에는 그냥 ‘한 손은 손가락 세 개를 펼치고, 다른 한손에는 하나만을 펼쳤다(on one hand she had three fingers outstretched and on the other hand just one finger)’고만 나와있다. [Back]
  3. 가톨릭 인터넷 Goodnews 성인정보 - 체칠리아(11.22) 마지막 문단 참조. [Back]
2009/06/20 00:42 2009/06/2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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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골든벨 소녀 2009/06/23 10:25 Delete Reply

    좋은노래 잘듣고 갑니다. 포레레퀴엠 좋아요. 이 CD도 지를듯.ㅎㅎ
    몇일있다 선생님 B단조미사도 하시던데..

    1. Re: # 달크로즈 2009/06/24 18:14 Delete

      골든벨 소녀가 누군가 했었어요. ^_^;
      아아, 저도 헤레베헤 음반 여러개 지르고 싶은데(바흐 칸타타나 미사곡, 브루크너) 돈이 없어서... 흑흑. ㅠ_ㅠ (요즘 돈 없다는 말을 자주하네요. 휴.)

      넵. 모테트 합창단이랑 같이 하는 것 같더라구요. 헤레베헤의 바흐 B단조 미사를 얼른 사듣고 예습을 한 뒤에 공연 보러 갈까 싶습니다. 둘리님 가실 듯 싶은데 혜령님도 함께 하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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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years after

Posted 2009/04/22 01:44, Filed under: 기록/일상 이야기

 요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현역을 종종 들른다. 대부분 적당한 카페에 들러 잠시 머물기 위함인데, 요즘엔 거기에 더해 교보문고 분당점에도 자주 들락거리고 있다. 교보문고 분당점은 강남점에 비하면 규모도 적고, 익숙한 공간 배치가 아니라 좀 불편하기도 한데- 그래도 근처 다른 서점에 비하면 훨씬 낫다. 서점에 자주 가봤자 느는 것이라곤 책 욕심 뿐이라, 매번 갈 때마다 ‘이책도 저책도…’라며 몇번씩 들었다 놨다 하다가 빈손으로 걸어나오곤 한다. 오늘도 몇몇 책을 부여잡고 군침을 흘리다가 결국 사들고 나온 것은 씨네21이었다. 그리고, 핫트랙스에 들러서 오랬동안 눈독 들여왔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없이 산다’와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도 샀다. (두 앨범 모두 타이틀 곡이나 몇몇 곡 위주로만 들어 왔기 때문에, 앨범 전체로는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아마 앨범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주의 씨네21은 통권 700호이면서, 동시에 창간 14주년 기념특집호였다. 벌써 14주년. 판형이 약간 줄어들었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서란다. 한국 영화 시장만큼이나 영화 잡지의 사정도 좋지 못한 모양이다. 휴간이 지속되다가 이젠 웹사이트마저 접속이 되지 않는 필름2.0의 김영진 아저씨가 씨네21로 돌아와 이번호부터 격주간으로 칼럼을 연재한다고 한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 환영할 만한 일이다. 칼럼의 이름은 ‘점프 컷’. 얼핏 보니 칼럼 스타일은 필름2.0 시절의 ‘러프 컷’과 별 다를바 없어 보인다. 부디 이번 지면에선 중언부언해야 하는 일이 없기를. 아니 없어지기를.

  그러나 이번에 내게 700호를 사게 만든 데에는 그보다는 특집 기사의 영향이 컸다. 그러니까 ‘그들의 작업실 전격 공개!’라는 특집 기사 중에서 ‘가수 장기하의 앨범작업실’ 같은 것. 프로듀서 나잠수의 원룸이 그의 작업실이고, 보통 곡을 쓰는 장소도 자신의 방이라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누군가와 있거나 사람이 많으면 신경쓰여서”란다. 맞는 말. 노트에 글을 끄적거리는 거라면 몰라도, 노래라면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겠지. “문화평론가 진중권의 ‘PC방’”도 인상적이다.

진중권은 ‘쓰는 척’하지 않는다. 글로 먹고사는 다른 이들이 노트북을 놓고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을 때, 진중권은 그럴 시간에 쓰고 만다. (…) 그래서 그에게 가장 편한 작업실은 대한민국에서 직선 거리로 2km 반경 내에 하나씩 있다는 PC방이다. 그는 이곳에서 글을 쓰고, 뉴스를 읽고, 강의를 준비한다. 자신의 글에 달린 악플도 읽는다. 흡연이 가능하고 커피가 제공되고 성능 좋은 컴퓨터가 있고, 무엇보다 “다른데 신경쓸 게 없어서 몰입할 수 있다”는 게 PC방을 이용하는 이유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는 적의 총을 맞을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또 누군가에게는 화투장 하나를 뒤집어 전 재산을 날릴 수도 있는 순간에, 그리고 누군가는 그의 글을 향해 악플을 쓰고 있는 순간에, 진중권은 그 한켠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 씨네21 700호. 창간 14주년 특집기사 2 “작업 어디서 하세요?” 중에서

  과연 진중권 답다. 정훈이 만화는 창간 14주년 700호 기념 특집만화 ‘대한늬우스’로 2MB을 오공시절에 빗대어 절묘하게 비꼬았다. 하지만 사실 이번호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사는 공효진과 신민아를 함께 인터뷰한 기사였다. 이 둘은 7년전인 2002년에도 ‘한국영화 밝힐 새벽의 7인’이라는 기획을 통해 씨네21에 함께 등장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을 비롯해 권상우, 조승우, 류승범, 박해일, 임은경의 간단한 인터뷰와 소개 기사가 실렸던 것 같은데, 재미있는 건 그때 ‘7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었다는 점. 그리고 그 7년이 지난 올해, 함께 출연한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개봉하면서 두 사람이 다시 씨네21과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다. 공효진의 털털한 인터뷰도 재미있었지만 보다 흥미로웠던 건 신민아. 공효진이 “(아직까지)신비롭죠, 민아는.” 이라고 말하듯, 좀처럼 솔직한(?) 느낌의 신민아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없었던 터라 관심이 갔다. 신민아는 중학교 때 모델로 데뷔했는데, 당시 그녀가 다니던 중학교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 옆동네(행정구역상으로는 동일한 지역)의 중학교였다. 그래서 그 당시부터도 내 주변에서는 제법 유명했었고, ‘학교에서 봤는데 어떻더라’ 같은 이야기도 가끔 들었다. 중학교 이후로는 그나마 들려오던 간접적인 소식도 끊겼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뒤로도 꾸준히 매체에 등장했고, 유명한 연애기획사와 계약을 하더니, 지금은 꽤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다른 말보다 신민아가 인터뷰 중간에 “저 같은 배우들은 결국 선택당해야 하는 입장이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많아요”라고 하는 부분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어제 수업시간, MBC 드라마국 PD분이 특강을 오셔서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일화를 섞어가며 전반적인 작업 과정을 개론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아주 전형적인 특강 형태로 진행되는 시간이었지만,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는 언제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마련이다. “캐스팅은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들이 생각보다 커버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크지 않아요. 특히 진짜 A급 톱 배우들 중에선… 여자 주인공의 경우 처음엔 다 ‘김태희, 전지현(혹은 송혜교)’으로 시작하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가 않으니, 한단계씩 낮춰 가면서 가능한 선택지 중에서 최선을 고르는 겁니다.” 곧이어 MBC에서 조만간 시작하는 모 특집 드라마의 주인공 캐스팅 비화가 이어졌다. 스타성을 기준으로 배우들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결정되고,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배우들’에서 ‘선택 받기를 원하는 배우들’로 넘어가는 캐스팅 과정들. 이에 대해선 배우들도 물론 잘 알고 있을 거다. 잠시 다른 이야기지만 “좋은 평가를 받는 ‘웰메이드 드라마’가 시청률에서는 고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물론 시청률을 의식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공중파TV드라마에선 시청률을 떼놓고 평가 할 수 없어요. 공공재인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송되는 TV드라마는 ‘대중예술’이기 때문에 작가주의 예술이 가능한 영화와는 다릅니다. 시청자들의 대중적인 공감을 얻는 전제 하에 연출자가 하고 싶은 예술을 담는 것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주 원론적인 대답이기는 하지만, 그게 맞는 것 같다.

  다시 인터뷰 기사로 돌아와서, 인터뷰가 끝날 때쯤 인터뷰어 김도훈 기자가 ‘7년 전에 그렸던 7년 뒤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 당시 공효진은 7년 후의 자기는 “해외로 유학가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고, 신민아는 지금쯤이면 “아마 배낭을 메고 유럽과 미국을 돌고 있을걸”이라고 답했단다. (그리고 7년 후 지금 그녀들의 모습은? 보다시피 한국에서 연기를 계속하고 있고, 2년전 찍었던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7년전 자신의 말들이 좀 낯부끄러운지 폭소하기도 하고, 그때 그렸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운좋게도 지금까지 잘 걸어왔다고. 그래서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한다.

  그래. 어쨌든, 지금 이대로도 좋았으면, 되었다. 훗날 나 또한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시험기간이 끝나는 이번 주말쯤에는 그녀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내일 지구의 날을 기념해 나눠준다는 머그잔을 받기 위해 사전준비차 방문한)자주 들르지 않는 카페 한구석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2009/04/22 01:44 2009/04/22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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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느낌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9/04/22 02:06 Delete

    7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뭘하고 있을까? 그때, 그대로도 좋을 수 있다면.

  1. # JIYO 2009/04/23 04:04 Delete Reply

    글 재미있게 읽다가, 맨 마지막의 '머그'에 눈이 확!!! 머그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심지어 지구의 날 특집 머그! 두 개 받아서 하나만 나눠 주세요. ㅠ.ㅠ

    1. Re: # 달크로즈 2009/04/26 14:22 Delete

      저도 당일날에는 못받고 다음날 가족이 대신 받아줘서 딱 하나 생겼어요. ㅠ_ㅠ; 흑~!
      저도 머그 모으는 습관이 있어서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답니다.;

  2. # 보라 2009/05/06 16:35 Delete Reply

    흐흐, 사전준비차 방문한! 이라니 호호호
    저도 이번에 700호 재밌게 봤어요! 사실 꼼꼼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진중권의 PC방도, 다른 사람의 작업실도 참 재밌었다는.
    블로그 우측에 me2day가 있는게 참 좋은 기능 같다는.
    네이버 블로그에선 저렇게 못하죠?
    블로그 이사가야하는데... 귀찮다는....
    뭣보다 도메인이 맘에 안들어요!

    1. Re: # 달크로즈 2009/05/12 02:28 Delete

      결국 사전 방문한 보람도 없이 머그컵은 다른 가족이 받아왔지요. 후후.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아쉽지만, 안되죠. 보라님도 이사를 계획하시고 계셨던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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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밤11시. 이젠 밤마다 주차장이 변하는 아파트 단지 내 배드민턴장에서 바라본 정월 대보름 밤 하늘은 흐렸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보름달은 구름 사이로 간간히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안하던 짓을 하려니까 하늘도 도와주지 않는가보다. 그래도 언듯 비치는 보름달에 간단히 소원을 빌고 친구들에게 ‘더위를 파는’ 전화를 돌린 다음, 동네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나서는 아이팟을 귀에 꽂은 채 단지 안을 조금 걷기로 했다. 이렇게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온 것이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고등학교 이후로는 동네를 이렇게 차분히 걸어 다닐 일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특히 최근 3-4년 안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걷다보니 조금 감상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관리사무소 옆을 지나니 농구대가 있는 조그마한 운동장이 보였다. 7-8년전만 해도 밤 늦은 시간까지 농구공 튀는 소리가 들렸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공을 갖고 노는 아이들 대신 자동차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는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단지에 차가 늘어 주차공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겠지만, 이젠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낮 시간에 다시 운동장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예전에 비해 확실히 뛰어노는 아이들은 줄어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일마다 단지 운동장이나 주차장에 나와서 친구들과 함께 공을 갖고 놀거나,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할 때까지 얼음땡 같은 놀이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아파트 단지에 아이가 줄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이들이 이젠 학원에서 공부하거나 컴퓨터와 노느라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단지 상가를 기웃거리며 예전의 그 가게들이 그대로 있는지를 살펴보고 단지 구석구석에 숨은 놀이터를 한번씩 들러갔다. 변한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안도하고 있는데 문득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를 수상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CCTV 카메라들이었다. 그래, 1-2년쯤 전에 동네에 CCTV를 설치했었지. 예전과 가장 달라진 동네 풍경이 CCTV라니. 처음에는 내 움직임이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생각에 좀 불쾌했으나, 며칠 전에 검거되어 뉴스를 가득 메운 연쇄살인범 소식을 생각해보면 현명한 선택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이 아파트 단지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변했다.


Blake's Shadow 전시 도록

Blake's Shadow 전시 도록

 오랜만에 서울대미술관에 다녀왔다. 작년 8월 시그마 폴케 전에 갔던게 마지막이었으니 실로 반년만이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예술적 유산 전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전시 막판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미술관에 찾아가는 습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매번 올 때마다 조금씩 풍광이 바뀌는 서울대학교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들어갔다. 미술관에 도착해 길다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리셉션리스트 Y씨가 나의 의외의 등장에 놀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중앙 코어 계단을 향하면서, 며칠 전에 동네를 거닐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 한때 참 익숙했었고, 정말로 좋아했던 공간을 오랜만에 둘러본다는 것. 어느새 2년이 흘렀다.

 제6전시실의 전시를 둘러보며 코어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미술관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3층 코어 전시실에 도착하자 김창렬의 ‘회귀 1993’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창섭, 신영상, 정탁영, 문학진.. 조금씩 위치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있는 그림들을 보니 반가움에 마음이 뛰었다. 그중에서도 마치 형제지간 같은 느낌을 주는 정탁영 선생님과 신영상 선생님의 큼지막한 두 그림이 특히 반가웠다. ‘윌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예술적 유산’전을 보면서는 예상과 다른 전시 구성에 조금 놀랐다. 전시를 보러 오기 전에는 당연히 ‘윌리엄 블레이크 전’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와서보니 블레이크 전이라기보단 블레이크가 영국 미술계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전시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영문 전시 제목이 ‘Blake’s shadow’였던 것.) 60여점의 전시작품 가운데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은 열점이 채 안되었고, 나머지는 그에게 영향을 받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었다. 드로잉도 많고, 작은 사이즈의 작품이 많아 포만감이 느껴지는 전시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흥미롭고 좋은 전시였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주제에 전시 설명도 충실했으니. 특히 작년에 밀레이 전시를 보고 난 이후 공부해 두었던 라파엘전파가 나올 땐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헌트’, ‘매독스 브라운’, ‘번 존스’에 ‘로제티(언급만 될 뿐 전시된 작품은 없었다)’까지 낯익은 이름들이 하나씩 언급되더니 밀레이의 그림도 등장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조그마한 그림 두 점. 이렇게 또 만나는구나. 그리고 마지막 섹션에는 또 한번 낯익은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현대작가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아니쉬 카푸어는 1991년에 터너 상을 받은 작가로, 다음달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in-i (안무가 아크람 칸과 프랑스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함께 해 화제가 된 무용공연)에서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작년 8월 in-i 공연 정보를 접하면서 알게 된 작가인데, 이렇게 전시작품으로서 만날 기회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MoA Vision 1 전시도 재미있었다. 블레이크의 그림자 전과는 비교될 정도로 큼지막한 작품들이 많았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가는 이지은씨.

 전시를 다 둘러 보고 난 뒤 바깥쪽 계단을 따라 미술관을 다시 한바퀴 돌았다. 동네 아파트단지처럼 미술관도 대체로는 예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예전과 달라진 모습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미술관은 이제 막 두번째 전시를 앞두고 있었고, 미술관의 많은 공간들이 아직 완전히 정돈되지 못한채 만들어진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낮이 되면 코어 부분 천장에 뚫린 채광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3층 전시실에도 ‘출입문’이나 ‘칸막이’따위는 존재하지 않은 채 건물 전체 공간이 단절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 렘 쿨하스OMA가 이 건물을 설계 했을 때 의도했었던 바 그대로였을 것이다. 지금은 3층 전시실에 칸막이가 있었다. 두개의 전시를 구분하고 전시 동선을 정돈하기 위함일 것이다. 지하 2층에는 카페가 들어섰고 미술관치곤 많이 뚫려있었던 창문들에도 대부분 블라인드나 커튼이 쳐졌다. 코어 천장의 채광창도, 바깥 계단이 훤히 들여다보이던 강당 옆면의 유리창도, 3층 전시실에 뚫린 창에도. 예전에 나는 전시 설명을 마치고 난 뒤 종종 바로 1층 로비로 돌아가지 않고서 미술관 곳곳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3층 바깥계단 앞 창문으로 대학교 정문앞을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유난히 느리게 움직이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고, 2층 강의홀에 앉아있다가 어떤 건축학도를 도와 줄자로 강의홀 사이즈를 재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한양대 건축대학원에서 왔다는 그 여학생은 강당이나 연주회장, 공연장의 음향설계를 공부하고 있었는데-당시는 미술관이 완공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이라 미술전시를 보러온 사람들 만큼이나 렘 쿨하스의 건물을 보러 온 건축학도들이 많았다- 공간의 형태와 재질을 어떤 공식에 넣으면 이 곳의 음향이 어떤지 수치로 알 수 있다고 했었다. 난 당시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기에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엘 크로키(El Croquis)에서 건물을 취재하러 와서, 건물 사진을 찍기 위해 강당 옆면 전체에 드리워진 커튼을 다 올렸던 적도 있었다. 강렬히 내리쬐는 가을 햇빛이 강당을 메우던 그 풍광은 인상적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는 그런 광경일 것이다. 렘 쿨하스가 다시 와서 미술관 공간을 둘러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설계자의 의도는 설계자의 의도일 뿐, ‘비가 샌다는’ 빌라 사브아의 경우처럼 유명한 건축가가 만들었다고 해서 실제로 그 공간을 살아내는 사람들 입장에서 편안하라는 법은 없다. 모든 삶의 공간은 누적되는 일상의 시간만큼 변해간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도, 다른 누군가 살고 있는 그 공간도 매일 하루치의 삶이 보태지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처음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공간이란 다시말하자면 죽어있는 공간일 것이다.

2009/02/15 14:21 2009/02/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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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저녁 시간에 강남역에 가면, 6번 출구 앞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을 본다. 작년 여름, 거리마다 한창 촛불이 불타올랐었던 그 때에도 간간히 보았지만-그때도 저녁즈음 강남거리에서 전구로 만든 촛불을 든 사람들을 몇 번 마주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 촛불이 점차 사그러든 이후에도 간혹 6번 출구 앞에서는 촛불들을 볼 수 있었다.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도 없다. 가끔씩은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하지만 그저 그들은 보통 조용히 불꽃을 든 채로 서있다. 알루미늄 이젤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명박을 합성한 패러디 이미지나,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자료를 담은 패널을 전시하듯 걸어놓고. 그 북적이는 저녁 시간대의 강남역, 그것도 가장 붐비는 6번 출구에서. 매번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어떤 단체나 커뮤니티가 주축이 되서 하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촛불은 촛불로만 보일 뿐이다. 바삐 지나가는 인파들 속에서 조용히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촛불.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속으로라도 말을 건네곤 했다. 반갑다고, 힘내라고. 공감한다고.

  오늘도 강남역을 들렀다가 그 촛불을 보았다. 문득, 며칠전 인재로 사람이 죽은 비통한 사건 앞에서도 ‘과격 시위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와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슬퍼졌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 마치 그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 내게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기운이 났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나가는 강남역의 인파 중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분명 있을 거다.

  문득 요즘 유럽에서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는 반정부 시위가 생각났다. 이번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경제위기’로 촉발되어 지난 12월 경찰의 손에 15세 소년이 죽자 대규모로 확산된 그리스의 반정부 시위 소식과, 젊은 이들의 교육문제로 시작된 이탈리아의 시위 소식이 실려있었다. 어느새, 오늘 인터넷 뉴스를 보니 ‘국가부도’로 시위가 있었던 아이슬란드의 현정권이 붕괴되었다는 소식과 라트비아를 비롯한 발트3국에서도 큰 규모의 시위가 일고 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에서도 8개의 주요 노조연맹이 바로 오늘 29일 하루동안 연대 총파업을 한다고 한다. 이런 시위가 촉발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세계 경제 위기’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는 특히 젊은 세대들이 살기 힘든 사회구조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가 늙은이와 젊은이를 따져서 찾아올리가 만무하지만 경제-금융위기가 찾아오기 바로 이전부터, 20대- 젊은 세대가 유난히 살아가기 팍팍해진 것은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젊은 세대의 위기’는 요즘 세계 어딜가나 비슷한 현상인가보다. 적어도 G20에 포함되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1000유로세대라는 말이 어느새 700유로세대로 바뀌었고,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게 된 해직자가 넘쳐난다는 미국 상황은 말할 것도 없겠다. 다만 브라질이라던가 남미, 인도쪽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젊은 세대의 위기’는 ‘금융산업’을 키운 서구화된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도. 그런데 ‘파생상품’등으로 수식되는 ‘금융산업’의 문제와 ‘일자리,비정규직’등으로 수식되는 청년층 문제는 어떤 관련이 있는걸까. 금융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노동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인가.

Perhaps the most poignant emblem of this dereliction is the British pub. The pub is the archetypal small business - the simplest, most rooted organisation there is. Pubs have thrived for centuries. But they are now closing at a rate of around 30 a week. Part of this is due to changing social habits. But it is also the case, not to put too fine a point on it, that pubs have been rogered frontwards, backwards and sideways by financial whizzkids who piled them with complex debt and left them desperately underinvested - at the same time extracting exorbitant fees for the privilege.
The death of the local is a fitting monument to a bankrupt management model. It's time to get angry.

  영어 공부를 겸해 구독해서 읽기 시작한지도 벌써 네달째에 접어드는 가디언 위클리Guardian Weekly의 이번호에는 사이먼 컬킨Simon Caulkin이 옵저버에 썼던 칼럼이 실렸다.(1월 11일자 칼럼. 이번호라고 해도 보통 한국에 딱1주일늦게 도착하고, 또 내가 읽는 것은 그로부터 1주일간이니 실질적으로는 2주 늦게 읽는 셈이다.) 경제위기가 아이슬란드만큼이나 심각하다는 금융강국 영국. 칼럼의 내용은 자국내의 암울한 불황과 그 원인에 대한 것이었는데 바로 위에 인용한 마지막 문단, 특히 그중에서도 “It's time to get angry.”라는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돌아본 온라인 뉴스 한구석에서 ‘영국의 위기’ 운운하는 기사가 눈에 들어와도 그리 놀랍지 않을 정도로.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처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날까? 한국은? 요즘 매일같이 청년실업 문제가 뉴스의 한구석을 장식하는 것만 봐도, 역시 ‘체감’되는 위기가 상당한 것 같다. 내가 당장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업준비생인 내 친구들 중 몇몇은 지금 이 순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한번, 한국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날까? ‘쇠고기 파동’과는 성향이 다른 어떤 시위가. 그럼, 그 시위가 답을 전해줄 수 있을까? 우리를 둘러싼 사회 경제적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시기를 견뎌내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역시 군대나 가야하는 걸까. 휴.)


2009/01/29 03:14 2009/01/29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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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9/01/29 03:20 Delete

    강남역 거리에서 마주친 촛불.

  1. # JIYO 2009/01/30 13:46 Delete Reply

    심각한 글에 뜬금없는 한마디. 영어 해석은 안 해 주시는 겁니까. 영어에 무지한 이를 위해. 너무하세요. ㅠ.ㅠ

    1. Re: # 달크로즈 2009/01/30 23:44 Delete

      앗!; 사실 저도 제대로 옮길 자신이 없어서 그냥 영어로 나뒀던 것인데.. 흑흑. ㅠ_ㅠ

      인용한 문단은 영국 선술집 '펍'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 전까지는 이번 경제 위기에 대한 이야기-비대하진 금융산업, 자본가-노동자 그 둘의 사이에 위치하는 '경영' 차원에서 진행되어온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 레이거노믹스,대처리즘의 병폐-가 죽 이어지고요.

      마지막으로 지난 수백년간 번성했던 '펍'이 최근에는 매주 30여개꼴로 문을 닫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사회적 습관의 변화로 인한 것이지만, 금융업자들이 그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들었기 때문이 크다는 거에요. 그동안에 자신들은 위한 상상을 초월하는 특권을 뽑아내고 있었고..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지역 펍의 죽음은 파산한 경영 모델의 결실이다. 이제 화를 내야 할 때다." 여기에서 "이제 화를 내야 할 때다"라는 건, 기사의 가장 첫 문단에 언급한 1968년 파리와 런던의 대규모 시위와 1년넘게 이어졌던 1980년대의 파업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요. 바꾸어 말하면 그 기사의 제목과도 같은 말이죠. :)


      (암튼 맨 처음 썼던 글에는 영어 인용구를 뺐기도 했었고- 굳이 읽지 않아도 블로그 글 전체에서 하려는 이야기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길래 그냥 다시 넣고 내버려 둔 거랍니다. ^_^;;)

  2. # 오리 2009/02/08 07:13 Delete Reply

    달크로즈님 안녕하세요.
    지난 10월 8일 하루를 마치고 강남역에서 올라오다가 마침 100일을 맞고 있는 강남촛불 분들을 처음 보고 와락 반가운 마음에(+버릇대로?!) 그 자리에서 동참해버리고 ^^; 백일기념 떡까지 얻어먹었던 생각이 나네요. 그로부터 이제 또 백 일도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하셨군요 그 분들은. 날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매워졌는데 자주 동참하지 못하는 제 마음은 죄스럽고 달크로즈님께서 보시고 속으로 응원하셨다는 게 따뜻해지네요.^^ 저도 처음 댓글 달아봅니다.
    인용하신 문단에서 영국인들의 해묵은 펍 사랑을 느꼈습니다. 펍이 망해간다면 그들은 정말 일어설 것 같습니다(...)

    1. Re: # 달크로즈 2009/02/15 15:06 Delete

      앗, 오리님은 그럼 그 강남촛불분들과 직접 함께 하신 적이 있으신 거군요. ^_^

      엊그제도 광화문쪽에선 꽤 대규모의 시위가 있었고 연행되신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정말 마음이 무겁네요.

      첫댓글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

      영국인들 '해묵은' 사랑은 참 무서운(?) 것 같아요. 후후. 펍때문에 일어서자니, 참 그네들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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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팬을 읽었다. 이 ‘자라지 않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책으로는 잘 읽히지 않는다. 잭 자이프스는 펭귄 클래식 판에서 서문의 첫 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는 주요 인물인 피터 팬 덕분에 유명해졌으나 오늘날까지도 원작으로는 잘 읽히지 않고 있다. 물론 수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피터 팬을 알고 있지만 그건 소설을 통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바르 갈리엔, 진 아서, 메리 마틴과 같은 여배우들이 피터 팬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연극 무대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피터 팬을 접한다. 사실 어린이와 어른 대다수가 피터 팬과 그 주변 인물들을 알게 되는 건 디즈니 도서, 텔레비전 각색물, 피터 팬 관련 각종 상품, 피터 팬의 현지어 상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후크」를 통해서다. 따라서 J. M. 베리의 소설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Peter Pan in Kensington Gardens』(1906)과 『피터와 웬디』(1911), 희곡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Peter Pan, or The Boy Who Would Not Grow Up』(1928년 최종본)을 원작으로 읽어 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피터 팬을 원작으로서는 읽어본 일이 없었다.(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책으로 피터 팬을 읽었던 것도 같지만 아마 그건 어린이용으로 아주 짧게 각색된 버전이었던 듯 싶다.) 심지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 팬’조차 보지 않았으나, 어린 시절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피터 팬을 알고 있었다. 피터 팬과 웬디. 팅커 벨. 그리고 후크 선장까지도. 피터 팬 책이 잘 읽히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별 다른 노력없이 다른 경로를 통해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가장 최근에 접한 피터 팬의 ‘또다른 버전’은 공연장에서 일할 때 접한-그리고 요즘도 공연하고 있는- 서울뮤지컬컴퍼니의 가족 뮤지컬 ‘피터 팬’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일하며 그 공연을 지켜봤을 때 ‘보나마나 애들 상대로 돈 좀 벌어보려고 급조한 뮤지컬이겠지’하고, 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하지만 원작-뮤지컬의 원작은 아마도 소설 ‘피터와 웬디’가 아니라 희곡 ‘자라지 않는 피터 팬’이겠지만-을 다 읽은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뮤지컬은 극을 아동용 뮤지컬로 바꾼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원작에 충실했고, 전반적으로 꽤 준수한 수준의 공연이었다. 그리고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영화 ‘파인딩 네버랜드’도 있다. 조니 뎁의 새영화로서 몇 해전 꽤 기다려서 보았던 ‘파인딩 네버랜드’는 피터 팬의 작가인 J.M. 베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였다. 제임스 매튜 베리는 꽤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잭 자이프스의 서문에도 J.M. 베리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길게 나온다. 베리의 일대기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와 실비아 루엘린 데이비스 가족과의 인연을 맺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파인딩 네버랜드’의 직접적인 줄거리가 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자가 상상의 세계를 펼쳐내는 장면. ‘네버랜드’는 판타지 소설에 종종 나오는 다른 차원의 세계, 아예 완전히 만들어져 가공된 채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마치 현실의 그림자처럼 존재하기는 하지만 명확하지 않고 아이들의 상상에 기대어서만 드러나는 세계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일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동화 같은데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것,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신선하고 상상하기가 편한 그런 점. 또 한편으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억 속 캐릭터들과 소설 속 캐릭터를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피터 팬의 성격과 그것을 별다른 불평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웬디와 잃어버린 아이들. 후크 선장은 내 머릿속에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악역답지 않은 악역이었다. 물론, 악역답지 않아도 악역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리고 마지막 장인 제17장, ‘웬디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달라진 점도 눈치 채지 못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의 피터 팬이 나타나 웬디의 딸 제인을, 또 제인의 딸 마거릿을 데리고 매년 봄맞이 네버랜드로 떠난다는 마지막은 참 좋았다. 그 동안 접했던 여러 애니메이션, 소설 등에서 접했던 마무리 방식의 시초가 되었을 법한 그 마지막.

펭귄 클래식 코리아 판 피터 팬에는 소설 『피터와 웬디』과 이어서 처음으로 피터 팬이 등장하는 작품인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도 함께 실려있다. 이 짧은 소설 속 피터 팬은 우리가 아는 피터 팬과는 사뭇 다른 또다른 버전의 피터 팬이다. 런던의 켄싱턴 공원과 하이드 파크를 구분 짓는 서펜타인 호수 속 저 멀리 있는 섬에서 살아가는 피터 팬. 조금 무서운 아서 래컴의 삽화 때문인지 『피터와 웬디』보다는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피터 팬이 두번째로 엄마를 찾아 돌아갔다가 결국 닫힌 창문에 좌절하고 돌아오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피터와 웬디』에서 한차례 언급되는 말의 배경이 된다.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 동상

켄싱턴 공원에 있는 피터 팬 동상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은 읽는 내내 내내 딱 1년전의 영국 여행이 떠올리게 했는데, 그건 켄싱턴 공원이라는 장소 때문이었다. 런던에 머물렀던 일주일. 유일하게 가봤던 런던의 로열 파크가 바로 켄싱턴 공원Kensington Gardens이었다. 숙소 자체가 사우스 켄싱턴 Queens Gate 로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Queens Gate를 따라 죽 올라가기만 하면 바로 켄싱턴 가든의 Queen’s Gate로 이어졌다. 하이드 파크나 세인트 제임스 파크 같은 다른 공원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끝내 가보지 못했던 기억과 더불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켄싱턴 가든의 추억. 오랜만에 여행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

동상을 둘러싼 기단부 앞쪽에 붙어있는 판. 1912년부터 이곳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좀 멀리서 본 모습

조금 멀리서 본 모습. 이날 함께 했던 일행도 찍혔다.

동상 옆에서

1년 전의 모습인데 왠지 조금 낯설다.

피터 팬 아래 디테일을 좀 더 가까이에서

당시엔 이게 '웬디와 잃어버린 아이들'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에 나오는 요정들이었다.

피터 팬

마지막으로 찍어 둔 피터 팬.

- J.M. 베리의 ‘피터 팬’ 작품들은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나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기 때문에 아래 링크된 곳을 통해 원문을 읽을 수 있다.(모두 영어)

『피터와 웬디』 http://www.gutenberg.org/etext/26654

『켄싱턴 가든의 피터 팬』 http://www.gutenberg.org/etext/26998

희곡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 http://gutenberg.net.au/ebooks03/0300081h.html

2009/01/24 01:55 2009/01/2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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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9/01/24 02:18 Delete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하나 썼다. 사진을 제외한 글 대부분은 Windows Live Writer로 써서 올린 것. 참, a77ila님이 쓰신 이 책에 보면 '후크 선장'과 'Thesaurus' 이야기가 나온다. 읽으면서 이 부분을 찾아보려 했는데 알고보니 그 부분은…

  2.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9/08/04 00:25 Delete

    펭귄클래식판 '피터 팬'에 서문을 썼으며, 작년 '동화의 정체'라는 책이 번역출간 되기도 한 잭 자이프스가 엮은 책. 근데 원제와 비교해 안드로메다로 간 듯한 제목은 그렇다쳐도, 원래 책 구성의 절반정도는 날려먹은 이 이상한 편집은 대체 뭘까? 독점계약이 아깝다.정말!

  1. # lckbless 2009/01/24 12:42 Delete Reply

    일행은 설마 그 비글의 주인분?!!

    1. Re: # 달크로즈 2009/01/24 14:11 Delete

      무슨 소리야. -.-;
      영국 여행에서는 호스텔 같은 방 사람들끼리 하루,이틀씩 같이 다니곤 했었지!

  2. # lckbless 2009/01/25 01:33 Delete Reply

    아 영국에서 찍은 사진이구나 ㅡㅡ; 아까는 글을 자세히 안 봐서...

  3. # 김미들 2009/01/27 01:45 Delete Reply

    오랜만의 포스트네요! <모두 영어>의 압박..

    1. Re: # 달크로즈 2009/01/28 02:31 Delete

      아.. 그게 원작은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어도 번역본은 좀 이야기가 달라지는지라.. ㅠ_ㅠ 누가 번역좀 해서 퍼블릭 도메인에 기증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미들님! :)

  4. # 보라 2009/05/06 16:37 Delete Reply

    오와, 나도 4월인가, 그즈음에 강의 과제로 읽은적이 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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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 대해 고민 한번 안해본 청춘들이 있을까, 지금 현재에 대해 단 한치의 불안감도 느껴본 적 없는 청춘이 있을까. 아마 없을거다. 자신이 제도권 안에 서있든지, 아니면 밖에 있던지. 아니 어디 청춘만 그러할까. 어려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누구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그 시간과 장소, 고민거리와 해법은 각자 다를지라도, 누구나.


 보라님의 첫 다큐멘터리 '로드 스쿨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라님을 비롯한 주인공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로드 스쿨러'라고 부른다. '로드 스쿨러Road schooler'는 흔히들 학교를 자퇴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을 지칭하는 기존의 용어, '홈 스쿨러Home schooler'에 대응해 만들어낸 말이다. 그들이 '홈 스쿨러'가 아니라 '로드 스쿨러'인 이유는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들에게 학교를 대신하는 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학교는 거리이고, 울타리 밖의 세상이다. 다큐멘터리는 칠판 앞에 앉아서가 아니라 길 위에서 자신의 발을 직접 딛고 배워나가는 길을 선택한 '학생'이 아닌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한 청소년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담긴 다큐멘터리를 주욱 보고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내게 '좋은 다큐멘터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좀 고민이 되겠지만. (작년 EIDF의 마스터 클래스를 들으면서 그 비슷한 고민을 했었던 거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 다만 예전부터 갖고 있는 한가지 생각은 이렇게 한창 보고 있는 와중에도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좋은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영감을 준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책이나 영화, 음악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나는 이 '로드 스쿨러'를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학교를 떠난 계기, 제도권 교육 밖의 경험담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을 듣고 있으니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때 그 공간에서 어떠했는지 무얼하고 있었는지. 이들이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던, 그래서 떠났던 '입시교육'을 나는 왜 떠나지 않았는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것이 가장 본질적인 해답일까 곰곰히 고민해보니 딱 한가지가 나왔다. 거두절미하고, '그 당시 나는 그렇게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았다'가 아마 가장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화면 속에서 거침없이 말을 하는 로드 스쿨러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모습에선 당시 내가 갖고 있지 않았던 어떤 '열정'(사실 이 '열정'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딱히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같은 것이 있다. 아마 학교를 벗어나게 된 데에는 순수한 자의 뿐만 아니라 타의도 작용한 결과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무언가 다른 걸 원했고 그래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내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깨달은 진리가 있는데, 지금과 다른 것을 자기 스스로가 간절히 원하고 또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다면.


 갑자기 오래 전에 봤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의도에 있었던 한 행사장에서,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가 유현이 '작가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저희 부모님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유 방임주의'셨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죠." 내 부모님들도 '자유 방임주의'까지는 아니지만-그러기엔 잔소리가 심하고, 이것저것 꽤 시킨 편이니- 그래도 결국 자식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편이다. 지금와 돌이켜보건대, 이건 꽤 행운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자라날 수 있었을테니까.

내 학창시절은 딱히 즐겁지는 않았지만, 괴롭지도 않았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면서부터 기나 긴 휴학의 길로 들어섰는데(이 부분은 제대로 이야기 하자면 정말 길어질테니까 줄이겠다) 내 방황.. 아니 제도권에서 벗어나 내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천천히 남들과 타이밍을 다르게 가져가기 시작했고, 그래서 많은 질문을 받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속 한백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게 아마도 그 이유에서 일거다.
내 자신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진 거잖아.
왜냐면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일반적인 길을 가니까,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아, 그리고 학교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잖아.
근데 학교에서 나오게 되면, 우선 주변에서 질문을 되게 많이 하잖아.
너는 '왜 학교를 그만두냐' '니가 하고 싶은 건 뭐냐'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도 끊임없이 나는 누군지 아니면 내가 뭘 하고 먹고 살건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때문에.
훨씬 더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자부심이나 자신감도 더 붙는 것 같아.
내가 선택한 길을 가는 사람이랑 남이 준 길,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이랑은 다르니까.

 - 한백, '로드 스쿨러'(2008) 중에서
 나 또한 학교를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변에서 지겹도록 "왜?","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을 받았다. 때로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때로는 어떻게든 대답해야 했다. 단지 대답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납득시켜야 하는 대상은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으니까. 뒤쳐지고 있다는 초조함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맞서 합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질문받고 생각하고 납득하고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래도 예전보다는 한결 편안해졌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거라는 그런 자신감도 생겼고. 이 다큐멘터리와 내 정서가 만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였던 것 같다.

 '중복되는 인터뷰'도 보이고, 이래저래 완전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은, 조금은 거친 '첫' 다큐멘터리지만,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굵고 선명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감 제로'로 직접 담아낸 영상이 주는 솔직함도 매력적이다. 각자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결국 울타리 밖으로, 거리 위에 서게 되는 때가 있다. ‘앞으로 뭘 할 거냐’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남이 정해준 길을 따라 걷고, 남이 마련해준 답에 따라 사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러니까 결국 스무살도 채 넘지 않은 나이에 길에서 배워나가는 법을 배운 '로드 스쿨러'들은, 다른 이들보다 뒤쳐진 게 아니라 오히려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2008/09/25 02:31 2008/09/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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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8/09/25 05:22 Delete

    보라님이 만드신 첫 다큐멘터리, '로드 스쿨러'에 대한 감상을 썼다. '길 위에서 보고, 듣고, 고민하는 것 - 로드 스쿨러'.

  1. # 보라 2008/09/25 12:05 Delete Reply

    앗, 이런 친절할데가!
    잘보셨다니 너무너무 다행이여요. 그리고 따끔한 목소리도 잘 담아놓을게요. 갑자기 얼른 '편집'하고 싶은 욕구가(사실 스킬도 없지만 하하).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되죠? 엔디님의 글과 함께 올려놓고 싶네요.
    부산영화제 언제가셔요? 전 아직 프로그램도 안챙겨놓았는데..허허. 감사합니다(진심으로)!

    1. Re: # 달크로즈 2008/09/25 13:31 Delete

      에고, 소심하게 덧붙인 거였는데 따끔하게 보였나요~; 암튼 저야말로 재미있게 잘 봤어요. 아직 최종 완성판이 아니었던거군요. 제 글은 물론, 마음껏 퍼가셔도 됩니다. :)
      부산영화제는 아마 3~7일쯤 있지 싶은데, 지금 제 문제는 숙박대책을 전혀 세워놓지 않았다는 거에요. ㅠ_ㅠ 숙박까지 생각하면 정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또 찜질방 전전하긴 싫은데. 고민 중 입니다.;
      다큐멘터리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왔더라구요. 보라님은 언제 가실 생각이세요? 기회가 된다면 뵈면 좋겠어요(진심으로)!

  2. # yuna 2008/09/26 00:46 Delete Reply

    스스로 선택해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면, 좋든 싫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 공감합니다.
    (그래서 '불안'이라는 책이 더 와닿았는지도? 헤헤)

    1. Re: # 달크로즈 2008/09/30 11:00 Delete

      네, 어찌보면 사서고생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뭔가 뿌듯하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것 같아요. 힘들지만. :)

  3. # jacopast 2008/09/26 18:57 Delete Reply

    하아. 언제 이런 걸 다 챙겨보십니까.

    1. Re: # 달크로즈 2008/09/30 11:03 Delete

      작호님은 언제나 일에, 야근에 바쁘실 듯 합니다만,
      저는 이제 담달 중순까지 시한부 백수라 시간이 남는 답니다.
      후후.. 백수생활을 즐겨야지요~

  4. # 희도리 2008/10/17 10:22 Delete Reply

    아름다운재단...^^ 간사예요. 로드스쿨러...잘 봤습니다. 생각할 기회를 주신 달크로즈님 감사해요. ^^

  5. # lckbless 2008/11/07 13:45 Delete Reply

    음, 얼마전에 Spyro gyra의 노래를 다운받으려 하는데 1997년에 낸 앨범의 이름이 Road scholars 더라구 처음 보고 road schoolers인줄 알고 깜짝 놀랐음.......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ㅡㅡ;

    자네도 퓨전재즈를 좋아하니까 한 번 들어보던가! 내가 알기로는 스파이로 자이라가 퓨전 재즈의 시초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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