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해 고민 한번 안해본 청춘들이 있을까, 지금 현재에 대해 단 한치의 불안감도 느껴본 적 없는 청춘이 있을까. 아마 없을거다. 자신이 제도권 안에 서있든지, 아니면 밖에 있던지. 아니 어디 청춘만 그러할까. 어려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누구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그 시간과 장소, 고민거리와 해법은 각자 다를지라도, 누구나.


 보라님의 첫 다큐멘터리 '로드 스쿨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라님을 비롯한 주인공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로드 스쿨러'라고 부른다. '로드 스쿨러Road schooler'는 흔히들 학교를 자퇴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을 지칭하는 기존의 용어, '홈 스쿨러Home schooler'에 대응해 만들어낸 말이다. 그들이 '홈 스쿨러'가 아니라 '로드 스쿨러'인 이유는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들에게 학교를 대신하는 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학교는 거리이고, 울타리 밖의 세상이다. 다큐멘터리는 칠판 앞에 앉아서가 아니라 길 위에서 자신의 발을 직접 딛고 배워나가는 길을 선택한 '학생'이 아닌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한 청소년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담긴 다큐멘터리를 주욱 보고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내게 '좋은 다큐멘터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좀 고민이 되겠지만. (작년 EIDF의 마스터 클래스를 들으면서 그 비슷한 고민을 했었던 거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 다만 예전부터 갖고 있는 한가지 생각은 이렇게 한창 보고 있는 와중에도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좋은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영감을 준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책이나 영화, 음악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나는 이 '로드 스쿨러'를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학교를 떠난 계기, 제도권 교육 밖의 경험담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을 듣고 있으니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때 그 공간에서 어떠했는지 무얼하고 있었는지. 이들이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던, 그래서 떠났던 '입시교육'을 나는 왜 떠나지 않았는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것이 가장 본질적인 해답일까 곰곰히 고민해보니 딱 한가지가 나왔다. 거두절미하고, '그 당시 나는 그렇게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았다'가 아마 가장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화면 속에서 거침없이 말을 하는 로드 스쿨러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모습에선 당시 내가 갖고 있지 않았던 어떤 '열정'(사실 이 '열정'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딱히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같은 것이 있다. 아마 학교를 벗어나게 된 데에는 순수한 자의 뿐만 아니라 타의도 작용한 결과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무언가 다른 걸 원했고 그래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내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깨달은 진리가 있는데, 지금과 다른 것을 자기 스스로가 간절히 원하고 또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다면.


 갑자기 오래 전에 봤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의도에 있었던 한 행사장에서,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가 유현이 '작가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저희 부모님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유 방임주의'셨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죠." 내 부모님들도 '자유 방임주의'까지는 아니지만-그러기엔 잔소리가 심하고, 이것저것 꽤 시킨 편이니- 그래도 결국 자식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편이다. 지금와 돌이켜보건대, 이건 꽤 행운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자라날 수 있었을테니까.

내 학창시절은 딱히 즐겁지는 않았지만, 괴롭지도 않았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면서부터 기나 긴 휴학의 길로 들어섰는데(이 부분은 제대로 이야기 하자면 정말 길어질테니까 줄이겠다) 내 방황.. 아니 제도권에서 벗어나 내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천천히 남들과 타이밍을 다르게 가져가기 시작했고, 그래서 많은 질문을 받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속 한백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게 아마도 그 이유에서 일거다.
내 자신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진 거잖아.
왜냐면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일반적인 길을 가니까,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아, 그리고 학교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잖아.
근데 학교에서 나오게 되면, 우선 주변에서 질문을 되게 많이 하잖아.
너는 '왜 학교를 그만두냐' '니가 하고 싶은 건 뭐냐'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도 끊임없이 나는 누군지 아니면 내가 뭘 하고 먹고 살건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때문에.
훨씬 더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자부심이나 자신감도 더 붙는 것 같아.
내가 선택한 길을 가는 사람이랑 남이 준 길,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이랑은 다르니까.

 - 한백, '로드 스쿨러'(2008) 중에서
 나 또한 학교를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변에서 지겹도록 "왜?","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을 받았다. 때로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때로는 어떻게든 대답해야 했다. 단지 대답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납득시켜야 하는 대상은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으니까. 뒤쳐지고 있다는 초조함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맞서 합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질문받고 생각하고 납득하고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래도 예전보다는 한결 편안해졌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거라는 그런 자신감도 생겼고. 이 다큐멘터리와 내 정서가 만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였던 것 같다.

 '중복되는 인터뷰'도 보이고, 이래저래 완전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은, 조금은 거친 '첫' 다큐멘터리지만,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굵고 선명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감 제로'로 직접 담아낸 영상이 주는 솔직함도 매력적이다. 각자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결국 울타리 밖으로, 거리 위에 서게 되는 때가 있다. ‘앞으로 뭘 할 거냐’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남이 정해준 길을 따라 걷고, 남이 마련해준 답에 따라 사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러니까 결국 스무살도 채 넘지 않은 나이에 길에서 배워나가는 법을 배운 '로드 스쿨러'들은, 다른 이들보다 뒤쳐진 게 아니라 오히려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2008/09/25 02:31 2008/09/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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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크로즈의 생각

    Tracked from dalcrose's me2DAY 2008/09/25 05:22 Delete

    보라님이 만드신 첫 다큐멘터리, '로드 스쿨러'에 대한 감상을 썼다. '길 위에서 보고, 듣고, 고민하는 것 - 로드 스쿨러'.

  1. # 보라 2008/09/25 12:05 Delete Reply

    앗, 이런 친절할데가!
    잘보셨다니 너무너무 다행이여요. 그리고 따끔한 목소리도 잘 담아놓을게요. 갑자기 얼른 '편집'하고 싶은 욕구가(사실 스킬도 없지만 하하).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되죠? 엔디님의 글과 함께 올려놓고 싶네요.
    부산영화제 언제가셔요? 전 아직 프로그램도 안챙겨놓았는데..허허. 감사합니다(진심으로)!

    1. Re: # 달크로즈 2008/09/25 13:31 Delete

      에고, 소심하게 덧붙인 거였는데 따끔하게 보였나요~; 암튼 저야말로 재미있게 잘 봤어요. 아직 최종 완성판이 아니었던거군요. 제 글은 물론, 마음껏 퍼가셔도 됩니다. :)
      부산영화제는 아마 3~7일쯤 있지 싶은데, 지금 제 문제는 숙박대책을 전혀 세워놓지 않았다는 거에요. ㅠ_ㅠ 숙박까지 생각하면 정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또 찜질방 전전하긴 싫은데. 고민 중 입니다.;
      다큐멘터리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왔더라구요. 보라님은 언제 가실 생각이세요? 기회가 된다면 뵈면 좋겠어요(진심으로)!

  2. # yuna 2008/09/26 00:46 Delete Reply

    스스로 선택해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면, 좋든 싫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 공감합니다.
    (그래서 '불안'이라는 책이 더 와닿았는지도? 헤헤)

    1. Re: # 달크로즈 2008/09/30 11:00 Delete

      네, 어찌보면 사서고생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뭔가 뿌듯하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것 같아요. 힘들지만. :)

  3. # jacopast 2008/09/26 18:57 Delete Reply

    하아. 언제 이런 걸 다 챙겨보십니까.

    1. Re: # 달크로즈 2008/09/30 11:03 Delete

      작호님은 언제나 일에, 야근에 바쁘실 듯 합니다만,
      저는 이제 담달 중순까지 시한부 백수라 시간이 남는 답니다.
      후후.. 백수생활을 즐겨야지요~

  4. # 희도리 2008/10/17 10:22 Delete Reply

    아름다운재단...^^ 간사예요. 로드스쿨러...잘 봤습니다. 생각할 기회를 주신 달크로즈님 감사해요. ^^

  5. # lckbless 2008/11/07 13:45 Delete Reply

    음, 얼마전에 Spyro gyra의 노래를 다운받으려 하는데 1997년에 낸 앨범의 이름이 Road scholars 더라구 처음 보고 road schoolers인줄 알고 깜짝 놀랐음.......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ㅡㅡ;

    자네도 퓨전재즈를 좋아하니까 한 번 들어보던가! 내가 알기로는 스파이로 자이라가 퓨전 재즈의 시초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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